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한동안 장강명 작가의 책을 읽었다.
이분의 본업은 소설가이고 추구하는 작품세계의 주된 정체성도 '소설'이지만, 소설가가 아닌 '글 쓰는 사람'으로써 이분의 글에 끌려 읽게 되었다. 사실적이고 정확하지만 인간미가 있는 글. 예리하고 명쾌하지만 읽는 이를 아프게 찌르지 않는 글. 잔잔한 유머를 중간중간 품은 글.
본인이 몸담은 글의 세계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담아낸 그의 글이 좋았다. (작가 자체도 글과 많이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분의 글에 매력을 느낀 이유 중 하나는, '글'이라는 단어로 포괄적으로 묶이는 세계는 무궁무진한데, 그것을 구획화하고 이론화하고 객관화하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동안 직관적 감각으로 받아들였던 나의 글의 세계가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되었고, 글을 보는 시선이 이전보다 좀 더 입체적이 된 느낌을 받았다.
과한 미사여구 없이 솔직하고 담백한 지성이 담긴 글. 아마도 나는 이런 류의 명쾌한 글은 쓸 수 없겠지만, 이분 글의 특정 영역을 앞으로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장강명 작가의 책을 읽는 한편 새로운 일을 하나 더 했다.
종종 들을 수 있는 표현 중 '첫 삽'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건물이나 시설을 처음으로 시공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보편적인 말이지만 스스로에게 적용한다면 거창한 의미로 여겨져 '첫 삽'이라고 말하기에 과하지만 그럼에도 그 단어를 떠올린 이유는 한동안 머릿속에 있던 형태의 글을 마침내 활자화해 보았기 때문이다.
쓰면서 언제나 실감하던 사실은 머리의 글과 손의 글은 전혀 다른 영역이라는 사실이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그럼에도 대개 손끝이 생각을 따라잡지 못해 좌절했다면, 이번에는 손의 글과 머리의 글은 달랐지만 선호하는 영역의 글이 좀 더 명확해졌다는 장점이 있었다. 쓰면서 손이 따로 놀고 예상 못했던 글이 나오는 것을 보며 깨달았다. 사실은 이런 글을 쓰고 싶었겠구나. 나는 이런 글을 사랑하는구나라는 것을. 인물 내면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파고들고 표현하는 일. 특정 상황에 담긴 마음을 읽어내는 일. 내가 좋아하고 쓰고 싶은 영역의 글일 것이었다. 글을 쓰는 주된 이유도 마침내는 그것을 표현하기 위함 아닐까? 머릿속 글을 활자화해 본 소득이었다.
끝으로 장강명 작가의 책에서 좋아했던 부분이 '지성'의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이 글을 위해 다시 책을 보며 나는 이 작가에게 '감정' 부분에서도 정확하게 공감했겠구나 싶었다. 말하자면 이런 부분에서.
'나는 몇 년 전까지 원고를 동네 문구점에서 제본할 때 사장님이 내 글의 첫 장을 쳐다보는 것도 무안했다. 겉봉에 출판사 주소를 적은 우편물을 우체국에 접수하는 게 부끄러워서 무인 우편창구를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책 한번 써봅시다.
'(도서관에 갔다가 대출대에서 자신의 책을 읽는 사서를 발견하고) 대출대에는 보통 직원이 세 명 앉아 있는데, 하필 그때 다른 두 사람은 자리를 비운 참이었다. 나는 다른 직원이 올 때까지 꽤나 기다렸다.'-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북토크 하러 가는 지하철에서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를 발견하고) 나는 그녀가 당연히 북토크에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자칫하다 여기서 인사를 나누면 그대로 나란히 행사장까지 어색한 대화를 나누며 가야 할 텐데, 그건 나에게나 독자에게나 정말이지 고역이겠지.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글쓰기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고, 그것을 깊이 사랑하고 깊이 파고드는 사람도 한없이 많다. 오래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그 길 위에 있는 이들은 때로는 존재 자체로 같은 것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위안을 준다. 언제까지 이 마음이 지속될지 모르지만 마음이 바라는 시간까지 가보는 수밖에. 그리고 그것을 사랑하는 이들 또한 가능한 한 이 세계에 오래도록 머무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