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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카사(山笠) 앞에서

내가 머무는 시간

by 수진

후쿠오카(福岡)의 여름은 전(前) 반과 후(後) 반으로 나뉜다. 본격 무더위가 시작되기 이전과 본격 무더위가 시작된 이후. 그 기점에 ‘야마카사(山笠)’가 놓여있다.

‘하카타기온야마카사(博多祇園山笠)’는 후쿠오카 최대 여름 축제로, 전통 의상을 입은 남자들이 야마카사 가마를 메고 거리를 질주하는 박진감 넘치는 행사이다. 축제의 기원은 약 8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쇼이치 고쿠시’라는 승려가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을 막기 위해 마을을 돌며 기원하는 마음으로 물을 뿌린 행위를 시작으로 해마다 이어진 의식이 오늘날의 축제로 발전하게 되었다.

-소믈리에 타임스(https://www.sommeliertimes.com/) '요리의 말들' 칼럼 32화 중에서.


후쿠오카의 익숙한 일상 속 이곳은 '일본'이라는 감각이 새롭게 느껴지는 순간은 축제의 현장이다. 전통을 사랑하는 일본은 축제(祭り)를 사랑한다. 신년 에비스 축제(恵比寿祭り), 봄 꽃놀이(花見), 여름 불꽃축제(花火)... 절기별로 행사가 펼쳐져 종종 야타이(屋台, 일본식 야외 포장마차)를 마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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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타이(屋台)

대부분의 축제현장은 이방인의 시선으로 얼마간의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스쳐왔지만, '야마카사(山笠)'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문화 충격에 가까웠다. 훈도시(ふんどし, 일본의 전통적인 남성용 속옷)를 입고 경주하는 이 축제는 좀처럼 적응이 안 되는 문화였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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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내가 흥미를 가지게 된 부분은 당최 "왜?"라는 부분이었다. 야마카사의 경우 8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행사이지만 모든 사람이 이 축제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의무가 아니라 자율에 맡기는 행사인데, 요즘에는 점점 개인주의적인 측면이 강해져서 더 그런 것 같다. 그럼에도 핵심 멤버들은 있다. 이들은 일찍부터(축제 시작 한 달 전) 축제를 준비하며 이와 관련된 모든 것을 부지런히 주관한다. 곳곳에 야마카사를 예고하는 깃발을 세우고, 참여 의사를 묻는 안내물을 발송하고, 축제의 주인공인 대형 가마를 들여오고...

아이의 학교 생활 덕분에 학부모들과 안면이 생기며 이들 멤버들 중 내게도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는데, 대체로 학교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PTA(부모 parent와 교사 teacher의 모임으로 한국에서 비슷한 개념이라면 육성회에 비유할 수 있을 듯하다.) 멤버였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부분은 이들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주말 이른 아침에도 늦은 밤에도 행사준비를 위해 열심히 임하는 것인가. 아직까지는 답을 찾을 수 없는 부분이다.


7월 초인데 날은 빠르게 더워졌다. 낮에는 계속 시원한 곳에 있다가 저녁에 산책 겸 집을 나섰는데, 7월 20일 열리는 야마카사를 앞두고 1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앉아 회의하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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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있는 이들 앞을 지나치는데 무언가 조금 익숙했다. 이런 것들이. 눅눅하지만 얼마간은 시원한 여름밤의 공기와 희미한 담배냄새, 풀숲에서 들리는 벌레소리, 주변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내뿜는 밤의 활기.

희미하지만 어린 시절 비슷한 분위기를 겪었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동네 어른들이 모여서 수다 떨던 풍경. 이곳에서는 처음 접했지만 분명 아는 분위기였다.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더는 마주하기 어려웠을 이 풍경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곳.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시간은 어느 시간대인 것일까. 생소했지만 희미하게 기억 속 한 장면이 떠올랐던 여름밤이었다.

덧. 의도한 건 아니지만 한국이 그리운 날, 이런 비일상의 현장을 마주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곳에 있었기에 마주할 수 있던 세계를 마음 안에 쌓아가는 것. 이것이 현재 건질 수 있는 보물일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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