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다.
유카타(ゆかた)를 보고 들었던 생각이다. 입어 보고 싶던 그 옷은 온천 마을 벳부(別府)의 호텔에 있었고, 덕분에 여행 첫날에도 입고 색깔을 바꿔 둘째 날에도 입었다. 유카타 차림으로 머물던 여행의 시간들. 옷만 바꿔 입었을 뿐인데, 유카타는 입는 순간 여행자의 마음으로 전환시켜 주는 옷이었다.
전혀 몰랐지만 유카타와의 인연은 여행으로 끝이 아니었고, 일본으로 거주지를 옮긴 뒤 유카타의 세계는 확장되었다. 여름 불꽃 축제(花火) 현장에서, 온천이 있는 료칸 혹은 여행지의 호텔에서, 아이들의 여름 의상에서... 유카타는 비 일상의 틈에서 불쑥불쑥 등장했고, 유카타가 있는 날들은 화사했다. 여행과는 전혀 다르게 글 쓰고 일하는 일본의 많은 날이 심플했기에, 대조적으로 유카타가 등장하는 날들은 더욱 화사했는지 모른다.
유카타 문화의 이면을 본 것은 축제(祭り)를 준비하는 현장이었다.
따각!
밤 산책길, 일순간 서늘한 소리가 들려왔다. 따각따각! 유카타에 신는 나무 신발 게다(下駄)가 지면에 닿는 소리였다. 따각 따각 따각 따각.....!!! 지역 여름축제 '야마카사(山笠)'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게다를 신고 무리 지어 이동하던 밤, 많은 '게다'가 한꺼번에 빚어내는 소리는 의도는 차치하고 서늘했다. 밤이 서늘함을 극화했을까. 게다의 서늘한 마찰음이 들려오던 밤, 익숙하던 동네의 풍경조차 얼마간 낯설게 느껴졌다. 그 밤, 아름다움만 알았던 유카타의 이면을 비로소 보았는지도 모른다.
아름답지만 일순간 서늘한 옷. 현실에서 만난 유카타와 게다에는 얼마간 그런 모습이 담겨있었다.
유카타와 게다의 문화 속 삶도 다르지 않았다. 많은 시간이 아름다웠지만, 한 순간 홀연히 서늘했다. 그 서늘함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던 시간, 적응해 온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지던 타국의 시간, 한동안 물리적으로 혼자 있던 시간들, 누군가의 내면의 민낯을 본 시간, 몸이 아프던 날들... 홀로 남겨진 듯한 일본의 삶은 홀연히 서늘했다. 가끔은 "쿵" 하며 심장이 내려앉을 만큼.
그럼에도 현재 내가 유카타와 게다의 문화 속 머물 뿐, 삶의 본질 또한 다르지 않은 것 아닐까. 아름답지만 일순간 서늘하고 홀연히 쓸쓸한 삶. 서늘함은 생각나지 않을 만큼 다시 아름다운 날들. 삶의 민낯은 그렇지 않을까?
아름답지만 홀연히 서늘한 삶. 그럼에도 아름다운 시간에는 아름다움을 누리기를. 홀연히 서늘함이 찾아와도 아름다움의 힘으로 서늘함에 맞서기를. 모든 서늘함이 지나간 후 아름다운 시간이 다시 찾아옴을 기억하기를.
그런 생각을 했다.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주어진 삶을 잘 마쳐도, 그것으로 삶은 제법 충분한 것 아닐까. 그렇게 주어진 삶 속에서 하루하루 깊어지고 빚어지기를 바라며 이 여름을 넘어간다.
-유카타(ゆかた) : 浴衣(욕의). 기모노의 일종.
-게다(下駄, げた) : 일본식 나막신의 한 종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