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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Jan 28. 2023

새해를 맞이하는 일

군대에서 맞이했던 새해는? 

 군 생활을 하며 몇 차례의 새해를 맞이했다. 군에서 맞이하는 새해는 대부분 지휘관의 이벤트와 함께였다. 참석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고 사실 참석이 내키는 쪽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편안하게 새해를 맞이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 인지 상정이겠지만 조직의 특성상 주최하는 쪽도 참석하는 쪽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어느 해는 새벽부터 산에 올라 일출을 보고 떡국을 먹었고, 어느 해는 사단의 지침에 따라 세족식이 거행되었다. (다행히 세족식 대상자는 중대장들로 난 대상자가 아니었다. 섬김과 헌신을 모티브로 한 취지는 좋았으나 중대장들도 딱히 안 내켜하는 모습이 공감되었다.ㅋ) 가장 별로였던 해는 준비태세 훈련을 마치고 당시 유행하던 꼬꼬면을 먹었던 해였다. 정초 새벽부터 시작된 훈련은 평소 훈련보다 배는 피곤했다. 

 그런가 하면 어떤 해는 당직근무를 서며 새해를 맞이했다. 12월 31일부터 1월 1일까지 이어지는 이날의 근무는 2년짜리 근무라 일컬어지며 모두 은연중 기피했는데, 순번제로 그 근무에 당첨(!)된 나는 어차피 근무가 아니면 새해 이벤트에 참석할 것이므로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아니, 차라리 근무가 나을 수도 있었다. 한해의 마지막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送舊迎新) 근무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12시가 지나는 시점에 당직 근무자들과 새해인사를 나눴고, 근무교대 후에는 퇴근해서 책과 일기장을 챙겨 좋아하는 카페에 갔다. 몸은 피곤했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다짐과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취침보다 간절했다. 혼자 보내는 새해 첫날은 처음이었다. 선택한 메뉴는 연어 샌드위치와 커피. 메뉴 선정도 좋았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책을 읽으며 맞이한 새해첫날이 퍽 괜찮았다. 

 전역하는 2013년의 새해는 군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새해였다. 그날은 비로소 휴가를 내고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좋았고, 오지 않을 것 같던 전역의 해가 밝았다는 사실이 좋았다. 전역까지 아직 7개월의 긴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군에서 맞이한 다양한 새해는 때로는 즐거웠고, 때로는 별 감흥이 없었고, 때로는 주어진 환경의 무게와 해야 할 업무에 허덕였다. 어떠한 새해든 예외 없이 각각의 고유한 고통과 괴로움,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 시간 속 나의 모습과 살아가는 태도뿐이었다. 어느 해도 의미 없던 해가 없었고, 나를 성장시키지 않은 해가 없었다. 매 해 새로운 배움을 얻었다. 멈춰있거나 때로는 뒤로 가는 듯 보였던 해도 때로는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뒤 그 열매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희망을 놓지 않는 한 분명 그 해 몫의 가르침을 주고 나를 성장으로 이끌었다. 

어느덧 다시 새해가 밝았다. 무려 2023년이다. 바라본다. 올 한 해도 어김없이 열매 맺고 성장하기를. 때로는 시간이 지난 뒤 그 성장의 열매를 확인할 수 있다 해도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하루를 성실히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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