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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Feb 07. 2023

보안사고의 기억

첫 번째 이야기

 군부대에서 보안은 민감한 사안으로 온 부대가 항시 주의를 기울이고 특히 보안을 향한 지휘관의 관심은 상당하다. 보안을 담당하던 운영장교 시절 긴장을 늦출 수 없었는데, 그럼에도 몇 차례의 사건 사고가 있었다. 첫 과실은 운영장교 보직을 받은 뒤 얼마되지 않아 일어났다. 

 당시 나는 4/4분기 인사이동 시기에 따라 2011년 연말부로 운영장교로 재직하게 되었고, 곧 연간 일정에 따른 정기 보안감사를 받게 되었다. 그때의 운영과장 또한 보직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업무 파악과 보안감사 준비를 병행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계획을 세워 순차적으로 보안감사를 준비했고 인가된 저장매체인 usb를 점검하던 때였다. 대대가 보유하던 5개의 usb 중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당시 대대는 usb를 대대본부 1개, 4개 중대별로 각 1개씩 총 5개를 등록해 보유하고 있었고, 평소 운영과에서 통합 보관하고 있었다. 그런데 usb 보관함을 확인하던 중 특정중대의 usb가 없었고, 있을만한 곳은 전부 찾아보고 마지막 희망을 품고 전임자에게 확인해 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이유불문 usb는 없었고, 누군가의 과실 여부는 차치하고 보안감사 전 대책마련이 시급했다. 초조해진 과장은 나름 묘안을 짜냈다. 아직 지휘관이 모르는 상황이니 내부적으로 조용히 수습하는 것이 좋을듯하고, 방법인즉 동일한 제품을 구해 메꾸자는 제안이었다. 들키지 않는다면 현실성이 없는 계획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구입처에 가서 직접 구하는 게 나을 듯하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운영장교(나)였다. 마을에 하나 있는 문구점은 부대에서 수차례 이용하는 곳이니 사장님과 안면이 있는 간부들은 위험하고, 전입 온 지 얼마 안 돼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자(나)가 나서는 게 들킬확률이 적다는 판단이었다. 나는 그 당부에 따라 움직였다. 거절할 명분도 없었거니와 군 조직의 부서는 부서장의 지휘하에 움직이는 것이 당연했고, 나 스스로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는 미흡사항을 신속히 수습하기 위해 시야가 좁아져 있었다. 나는 태연하게 문구점에 가서 다른 중대의 동일한 usb를 샘플로제시하며 추가 주문을 요청했고, 사장님은 알아보겠다며 내가 가져간 제품을 카피 후에 돌려주셨다. 문제가 곧 해결될 것이라 여긴 우리 부서는 다른 사항들을 보완하며 보안감사 준비를 지속했다. 며칠뒤! 우리 부대를 담당하는 기무관의 불시 방문이 있었다. 당시 기무부대는 위력이 상당했고, 계급사회인 군이지만 기무대대 간부는 계급불문 대대장님과 단독으로 접견했다. 그날 역시 대대장님은 기무관과의 접견을 마치고, 함께 우리 사무실로 향했다. 평소에도 있을법한 일이었으나 기무관이 지참한 문서를 본 순간 보안사고임을 알았다. 그의 손에는 며칠 전 문구점 사장님이 내게 전달받아 카피했던 usb 사본이 들려있었다. 차마 대대장님의 표정은 보지 못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이없고 황당하고 뒤통수를 세게 맞았을 그의 기분을. 사건의 전말은 명백했다. 번번이 여러 부대의 크고 작은 요청을 받았을 문구점 사장님은 기무 부대에게 이 사실을 알렸을 것이고, 내가 어느 부대의 누구인지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테니 기무관은 해당 사건을 접수하고 바로 우리 부대로 향한 것이다. 변명의 여지조차 없는 어리석은 과실에 문구점 사장님을 향한 원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전입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부서장의 지시를 따랐을 뿐인 나에게 비난의 화살이 오지는 않았으나 마음이 무거웠다. 나도 그 계획에 동원되었으며, 아무리 군 생활에 장기적 뜻이 없다 해도 상관과의 신뢰가 깨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한바탕의 풍파가 지나며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과장은 경위서를 작성했고 끝내 발견되지 않은 usb는 분실 처리되었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필요시를 위해 준비해 둔 usb이므로 따로 저장된 내용은 없어서 여파가 비교적 적었다는 것이다. 

사건 자체는 그렇게 해결되었지만, 깨어질뻔한 관계의 수습이 남아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 일을 해야 할 관계였고 고작 연초였을 뿐이므로 자의든 타의든 어떻게든 그 갈등을 풀어야 했다. 시간이 약이었던가. 어떻게든 그 갈등은 표면적이나 마나 풀렸다. 서로의 속 마음은 알 수 없었으나 그 뒤로 여전히 대대장님과 식사를 하며 가끔 맥주잔을 기울였고, 여전히 그 문구점을 이용했으며(마을에 있는 문구점은 그곳 하나였다.) 이따금 기무관의 방문을 받으며 (평화로운)군 생활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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