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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Dec 20. 2022

부대에서의 하룻밤

여자 군인으로 사는 일? 

 개인적인 경험담이다. 소대장 시절 살던 숙소는 군인 아파트 단지의 한 동을 독신자 숙소로 구분해놓은 곳이었다. 12층 건물을 1층부터 11층까지는 우리 부대와 옆 부대의 미혼 남자 군인과 군무원들이 사용하고 12층 전체를 여군, 여군무원들이 사용했다. 참고로 우리 부대는 남자 대위급 이상의 미혼 간부부터 그곳을 사용했고, 중소위는 영내 독신자 숙소(BOQ)에 거주했다. 이름에 '별 성(星)'자가 들어가 듣는 순간 군인아파트임을 알 수 있던 그 아파트는 복도식 구조로 중앙 엘리베이터를 기점으로 양옆으로 각각 숙소가 열 채 정도 있어 복도가 꽤 길었고, 독신자 숙소 한 칸의 크기는 4-5평 정도로 크지 않았다. 화장실 겸 샤워실과 주방은 각 방마다 있었고, 세탁기, 정수기는 층마다 한 대 정도 비치되어 공용으로 사용했다. 

 어느 날이었다. 옆방에 지내던 타부대 여자 군무원 방에 밤 8-9시경 갑자기 남자가 침입하는 일이 생겼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난무했으나 사건의 전말은 끝내 알 수 없었고, 밤에 갑자기 문이 열리고 누군가 불쑥 들어와 그 여자분이 경기를 일으킬정도로 엄청나게 놀라 숙소를 기혼자 숙소가 있는 동으로 옮겼다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그 뒤로 방까지 가는 어둡고 긴 복도가 무서웠다. 항상 불이 켜진 상태가 아니고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가 있어 걸어가야만 비로소 불이 켜졌던 복도는 혹 끝에 누가 있어도 알 수 없었다. 잦은 야근으로 늦은 밤 집에 돌아올 때가 많았는데 복도에서 방까지 가는 발걸음이 두려움에 빨라졌다. 세탁기를 이용할 시간도 저녁뿐인데 방문을 열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 빨래하러 가는 일도 신경 쓰였고, 방에 있을 때면 습관적으로 문의 잠금 상태를 확인했다. 복도와 엘리베이터에 감시카메라가 있고 숙소를 관리하는 옆 부대에서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겠지만, 당장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므로 나 역시 개인적으로 안전에 신경 썼다. 후에 여자들이 지내는 12층의 복도는 밤에도 항상 불이 켜져 있도록 바뀌었다. 

 어느 명절이었다. 긴 연휴 기간 나의 출근일은 명절 뒤쪽으로 몰려 있었고, 창원에 아무 연고가 없던 나는 잠시 본가에 다녀왔다. 복귀한 것은 출근을 앞둔 밤이었다. 아직 휴일이 며칠 남은 명절 연휴의 밤, 외부에서 올려다본 독신자 숙소는 건물 전체에 불이 켜진 방이 거의 없었다. 특히 여자들이 지내는 12층은 단 한 채도 불이 켜진 방이 없었고, 항상 불이 켜져 있었던 복도마저 그날은 깜깜했다. 무서웠다. 아무렇지 않다 생각하고 일단 엘리베이터를 타서 12층을 눌렀다. 12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순간 눈앞에 펼쳐진 것은 암흑이었다. 혼자 저 어둠을 뚫고 캄캄한 복도를 지나 방까지 갈 용기가 없었다. 설령 방에 들어간다 해도, 문을 잠그고 있어도 무서울 것 같았다. 급하게 닫힘 버튼을 누르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잠깐 고민해 보았다. 

 물론 어둠을 뚫고 방까지 가서 아무도 없는 12층에서 혼자 하룻밤을 자는 방법이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다 생각하면 누군가에게는 무섭거나 어렵지 않은 일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섭고 꺼려졌다. 얼마 전 옆방에 누군가 침입한 일도 있었고, 나는 평소 식당에 가도 화장실이 건물 외부에 있으면 이용하지 않거나 일행과 함께 갈 정도로 위험이 있을만하거나 느낌이 좋지 않은 곳은 애초에 피했다.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사건 사고를 접하기 이전에도... 

  방에 가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늦은 밤이었고 만날 사람도, 집에 초대할 친구도 없었다. 한밤중에 호출할 만큼 막역한 동료도 없었고 상관에게 연락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말이지 나는 이 도시의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호텔이나 카페 등의 장소도 고민해봤지만 마땅치 않았고 결국 떠올린 곳은 부대 여군 휴게실이었다. 다음날 출근도 해야 하고 이미 늦은 밤이었으므로 그게 가장 나은 선택이라 여겨졌다. 

 부대에 도착해 당직 사령에게 양해를 구하고 여군 휴게실로 향했다. 굳이 다른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그날의 당직 사령은 타인의 일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분이라 오히려 편했다. 이것저것 묻는 쪽보다는 나았으니까... 

 그리고 푹 쉬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날 밤의 두려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휘통제실을 제외하고 모두 비어있는 본관 건물 복도 가장 끝에 위치한 여군 휴게실에 들어가 불을 끄고 눕자 무서움이 밀려왔다. 오래전 보았던 공포영화와 무서운 이야기들이 생각났고, 불현듯 다른 기억도 떠올랐다. 자대 배치 직후 이 부대에 왔을 때 만난 선배 여군의 이야기였다. 초임 간부였던 내게 군 생활에 대해 조언해준 선배는 본인 동기가 부대에서 겪은 성 관련 사건 사고의 이야기도 해주었다. 직접 보고 겪은 일이 아니므로 굳이 적지는 않겠지만, 그 이야기는 그날 밤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데 한몫 거들었다. 갑자기 휴게실 입구가 신경 쓰였고 잠금장치를 확인했다. 출입문 위에 있는 복도가 보이는 작은 창문도 자꾸 신경 쓰였다.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부대 밖으로 다시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갈 곳이 없었다. 결국 불을 일부 켠 상태로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마침내 아침을 맞이했다. 긴 밤이었다. 


덧. 왜 인지 모르지만 문득 이 글은 쓰고 싶었다. 각자가 살아가는 방식과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은 다를 것이기에 개인적인 경험담임을 서두에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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