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글을 공개하는 용기

나의 글은 정말 '나' 일까

by 수진

오랜만에 함께 군생활하던 동기의 연락을 받았다. 업무협조를 계기로 친구가 된 그는 내 주변 남자들을 통틀어 가장 책을 많이 보는 사람이다. 책을 보는 일은 엄청 특별하거나 지적인 일이 아님에도 내 주변에는 책을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특히 성별로 보면 내 주변에는 책을 좋아하는 남자들이 거의 없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고 남녀불문 일단 덮어놓고 호감을 갖는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고 실제로 내 실체를 내가 잘 알지만, 그럼에도 책을 좋아하는 타인을 보면 신중하고 사려 깊고 지적인 이미지가 (사실과 관계없이) 내 생각 속에서 그에게 덧입혀지는 것을 보면 나는 틀림없이 책과 책이 주는 이미지를 편애하는 것일 테다.

장기복무자였지만 전역의 길을 택하고 현재는 소방공무원이 된 그 동기는 여전히 책을 사랑하고 독립서점을 방문하는 등 책이 있는 삶 언저리에서 지내고 있었다. 문득 그동안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던 궁금함이 들어 물었다. 혹 글쓰기에는 관심이 없는지. 그는 책을 좋아하지만 글쓰기의 일은 일기 쓰기에 만족하고, 전문적인 글쓰기는 '신'의 영역에 가까운 일이라 생각하고 일종의 경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브런치 작가 데뷔를 추천해 주고 관심작가 중 그와 연관이 있을만한 이력이 있는 작가의 글을 보내주었다. 덕분에 브런치 사이트에 들어가 본 그는 신세계가 열렸다며 흥분하며 나의 브런치를 몹시 궁금해했다.

순간 멈칫했다. 이상한 일이다. 내가 모르는 안면도 없는 분들이 나의 글을 읽는 것은 괜찮은데 아니, 오히려 읽어주길 바라며 글을 쓰면서 구체적 실체가 있는 내가 아는 누군가에게 나의 글을 보인다는 것이 나로서는 무척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실제로 브런치 작가가 된 뒤 기쁜 마음에 내가 그 사실을 알린 사람들은 베프 한 명과 남동생 그리고 남편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글을 읽지 않는다. 그래서 편하다. 나의 글은 굳이 그들이 흥미를 가질 소재가 아니고, 소재 여부를 떠나 그들은 바쁘며, 그다지 글 읽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전혀 서운하지 않다.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된 그 자체만 알아주는데 만족했다.

하지만 나를 아는 누군가가 나의 글을 읽는다 생각하니 그동안 글을 쓰며 해왔던 자기 검열(민감 소재는 아닌지, 누군가를 아프게 하거나 상처 주지 않는지 등등..)에 추가적인 검열까지 덧붙일 나의 성정을 생각하자 순간 머릿속이 피곤해졌다. 과도한 검열을 거치며 글을 쓰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글에서 조차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나는 사실에 입각한 나의 이야기를 쓰지만 그럼에도 표면적으로 누군가를 마주할 때는 언어, 몸짓, 표정, 행동등의 보이는 정보만 전달한다면 글은 머릿속 한 구석의 정보까지 끄집어내서 펼쳐내는 종류의 것이므로 조금 더 망설여지고 꺼려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나의 인스타도, 블로그도 비슷한 것 같다. 누군가 읽길 바라며 글을 쓰면서도 혹 내가 아는 누군가 방문하고 연락을 주거나 답글을 남기면 그것이 어떤 글이냐 거나 그 상대가 누군지에 따라 다르지만 반가움보다는 굳이? 어쩐 일로?라는 생각이나 민망함이 앞서는 것을 보니 나는 모든 사람과 동일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기를 원하지는 않는 듯하다.

아무튼 끝내 동기에게는 브런치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다. 굳이 숨길일은 아니지만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스스로 찾아오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지만 아직은 그럴 용기가 안 생기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도로 오늘 또 현타가 오는 일이 생겼다. 어떠한 일을 계기로 브런치 글들을 정리하다가 몹시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난 시간에 내가 쓴 글들을 읽어보니 당시에는 뿌듯해하며 썼던 글 같은데 시간이 오래 지난 것도 아닌데 다시 보니... 내 글... 아직 갈길이 많이 먼 것 같다. 그간의 나의 글들을 읽어주시고 라이킷 해주신 분들은 얼마나 너그러웠던 것일까...

사실 나는 아직 모르겠다. 글은 쓸수록 는다고 해주신 분이 있는데, 그분이 몸의 근육을 키우듯 글의 근육도 키워지는 거라고 조언해 주셨는데.. 과연 재능이 없어도 쓸 수 있고 재능을 키울 수 있는 게 글일까. 내게 글쓰기에 관해 약간의 재능이라 이름할만한 것이 과연 있기는 한 걸까.. 나는 더 나아질 수 있는 것일까... 만약 정말로 몸의 근육을 키우듯 글쓰기의 근육도 키울 수 있다면 나는 아주 많이 글쓰기의 근육을 키워서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좋은 글, 힘 있는 글, 내가 바라는 대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글.. 나는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느덧 햇살에 봄기운이 가득하다. 오랫동안 글을 쓰려면 몸도 건강해야 하므로.. 나는 이제 달리러 나가야겠다.

덧. 오늘의 글은 마음에 든다. 시간이 지난 다음에 다시 읽어본다면 그 어설픔이 나를 또 민망하게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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