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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Jun 08. 2023

쓰기를 막는 것과 쓰게 하는 것

 오늘의 글쓰기에 관하여

 브런치를 막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군대 이야기에 관한 글 하나가 많은 관심을 받아 갑자기 조회수가 치솟으며 며칠사이에 구독자분들이 많이 늘어났다. 어느 분들이 나의 글을 구독할지 궁금해서 리스트를 보고 있는데 대부분 필명이나 별명 혹은 내가 알지 못하는 이름들인 구독자분들 가운데 낯익은 이름 하나가 눈에 띄었다. 분명 내가 아는 사람이 맞을 것이었다. 한때 소대원이었던 아이의 이름을 발견하고 반가움과 놀라움과 잘 지내고 있으리라는 안도감과 브런치의 영향력에 감탄하는 마음 등의 복합적인 감정과 함께 뒤섞여 나온 마음 중 하나는 분명 '민망함'의 영역에 있는 그것이었다. 성실하고 선한 기운을 풍겨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아이였음에도, 글 쓰는 곳에서 의외의 인물을 마주한 것에 대해 피하고 싶은 감정이 섞여있었다. 그 존재를 의식하지 않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했다. 

 '군인의 자아'가 아직 내게 남아있음을 문득 느끼는 일은 옛 인연들을 접할 때였다. 이따금 안부 연락을 주고받거나, 누군가의 결혼식 등의 행사에서 옛 인연들을 마주칠 때면 종종 기억 속에 있던 그 시절의 내가 소환되곤 했다. 그 후로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새롭게 관계를 형성해 인연을 이어나간 경우가 아니라면 관계를 통해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의 나로 멈춰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몇몇 순간들이 있었고 달갑지만은 않았다. 아마 반가움과 함께 찾아온 민망함은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의 누군가의 기억에 있는 나를 넘어 솔직하게 나아갈 수 있을까. 솔직하지 않은 글은 의미가 없는데, 그게 무엇이 되었든 과연 누군가를 의식 않고 날것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고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래서 글을 쓸 때 얼마간 그 글을 읽을 누군가의 구체적인 얼굴이 의식될 때가 있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는 서서히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썼다. 그냥 썼다. 

 내게 있어 쓰기를 막거나 멈칫하게 만들거나, 혹은 이미 쓰인 결과물을 의식하게 만드는 일은 나의 글을 읽을 누군가가 익명성이 아닌 구체성을 띌 때 일어났다. 친구, 지인, 직계가족, 그리고 아직 나의 글을 읽지는 않았겠지만(그렇기를 희망하지만) 아마도 시가 식구들... 그것은 누군가에 대한 호오(好惡)와는 별개로 감정적으로 분류하자면 쑥스러움에 가까운 마음일 것이다. 아마 더 깊숙한 속마음은 익명의 세계에서 더욱 자유로워지는 나만의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그 구체적 얼굴들로 나는 때로 멈칫했고 조금씩 그러한 나를 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루하루 아주 조금씩 나만 아는 정도로 때로는 나도 모를 정도로 아주 조금씩. 

 은유 작가는 그의 저서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말한다. (글쓰기 수업 학인들의 글을 공개 게시판에 공개하는 것에 부담을 갖는 학인들에 대해)'이 작은 공동체의 게시판조차 극복하지 못하면 공적 글쓰기는 불가능하다고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하는 작가 아니 에르노는 작품 속에서 서술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을 나는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이 쓰이는 때와 그것을 나 혼자서 읽는 때,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읽는 때는 이미 시간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테고, 어쩌면 남들에게 이 글이 읽힐 기회가 절대로 오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남들이 읽게 되기 전에 내가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전쟁이나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상의 차이 때문에 나는 마음 놓고 솔직하게 이 글을 쓸 수가 있다."라고. 과연!이라고 감탄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모든 것을 초월해 글을 쓰는 아니 에르노의 용감함이 어떤 건지 짐작조차 되지 않지만, 마음속에 품고 있는 작은 감정까지 낱낱이 숨김없이 표현할 수 있다면 그런 삶은 어떠할지 궁금함이 들었다. 끝내 그 경지에 다다를 수 없고, 어쩌면 원치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감당할 수 있는 선 까지는 그 솔직함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글쓰기를 오래 할 수 있고, 무엇보다 본인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되어줄 테니. 나는 결국 나 혼자만 보는 일기를 쓸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므로. 

 그렇다면 그와 반대로 나를 쓰게 만드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현재로서 내게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어 주는 것은 '쓰기'에 관한 글들이다. 가끔 브런치의 오늘의 작가로 선정된 분이나 관심작가등의 경로를 통해 쓰기에 관한 글을 쓰는 분들의 글을 읽곤 한다. 타고난 글쟁이들의 뜨거운 글은 글이 구리지 않을까, 상투적이지 않을까, 쓰나 마나 한 글 아닐까, 누가 읽기나 할까, 굳이 써야 할까 자꾸만 망설이는 내 마음에 말한다.  

서툴러도 괜찮다고, 부족해도 괜찮다고, 안 써져도 괜찮다고, 다 그렇다고. 쓰는 일을 놓지 않으면 된다고.  누구나 처음에는 그렇다고, 누구나 막힌다고, 누구나 좌절한다고, 그럼에도 쓰면 된다고. 

 누군가 언젠가 마음을 담아 써놓은 글들을 읽다 보면 그 글들은 읽히는 것으로 소비됨에 멈추지 않고, 내게 다시 생명력을 가지고 다가온다. 나는 다시 마음이 뜨거워졌고, 그래서 오늘도 또 글을 쓰고 싶었다. 

 

오늘 쓰기의 동반자인 드립커피와 오페라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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