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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Jun 23. 2023

내가 쓰는 편지는

글쓰기의 본질

 '소설가가 된 이후, 이따금씩 친구의 그 말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나에겐 찻집도 없고, 편지를 보내오는 사람도 없지만, 나는 어쩌면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향해 계속 답장을 써 보내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백수린, 다정한 매일매일


 이 문장을 읽고 조금 울컥했다. 글쓰기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향해 계속 답장을 써 보내는 일 같다는 저자의 말이 내게 너무나 글쓰기의 본질 같아서 조금 울컥했다. 

 편지를 쓰는 일을 좋아한다. 한 사람만을 향한 맞춤문장들로 이루어진 다정한 글을 쓸 때의 기쁨을 안다. 쓰는 이에게도 읽는 이에게도 온기를 주는 편지를. 내게 '편지'는 그런 의미이다. 하물며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향한 편지라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향해 지속적으로 마음이 담긴 편지를 쓰는 일은 얼마나 모호하고, 때로는 막연하고, 때로는 그 마음을 돌려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마음이 담긴 글을 쓰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일. 그 고요하고 뜨겁고, 따뜻한 열정에 나는 뭉클할 수밖에 없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지닌 세심한 마음의 결을 좋아한다. 단어 하나하나도 가볍게 고르지 않고, 함부로 내뱉지 않고, 때로는 표현하기에 앞서 깊은 호흡을 내뱉는 그 마음의 결을 보고 겪는 일을 좋아한다. 그 일은 내게 잔잔한 감동과 영감을 준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것들이다. TV나 뉴스에서 보도되는 성폭력 사건에 대해 '어휴, 저 아이(혹은 저 여자)는 이제 어떻게 살까' 속상해하며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가 현재 진행형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피해자에게 비수가 되어 꽂혔을지도 모름을 깨닫고 가슴에 철렁함을 느끼는 은유 작가님의 마음의 결, 무라카미 하루키에 관한 특종 기사를 1인 잡지에 게재해 완판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그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받은 성의를 성의로 되갚고자 하는 마음을 지닌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오하시 하유미의 마음의 결, 오하시 하유미의 그 숨겨진 마음의 결을 포착해 그것에 감동을 느끼고 언어로 표현하는 임경선 작가님의 마음의 결, 제자에게 보내는 답문에 여러 번 상황에 관해 생각하고 답장을 썼다는 한 교수님의 마음의 결 등이다. 나는 때로는 그 이유로 글을 읽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같다. 세심한 누군가의 마음의 결을 느끼고, 나도 그 세심한 마음의 결을 표현하고 싶어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쓰는 글이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가 되는 일을. 그렇게 쓰여진 나의 편지에 관하여 생각해 보았다. 그 편지는 세심하고 고요하며 나만의 고유한 마음의 결이 담긴 편지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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