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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Jun 28. 2023

우리의 교묘(巧妙)한 이야기

읽고 쓰는 일을 멈출 수가 없어서

 "에세이야 말로 실은 무시무시한 픽션이라는 걸 알아요. (중략) 어떤 사실은 교묘하게 감추고 어떤 사실은 티 안 나게 부풀리면서 저는 제 글 속에서 언제나 실제의 저보다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변모해요. (중략) 그렇지만 다른 작가들의 잘 윤색된 에세이를 보는 것은 여전히 아찔하게 좋아요." -요조,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요조'의 문장은 허를 찌르는 기발함이 있다. 가끔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발상의 독특함에 감탄하거나 무언가 허를 찔리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르가 에세이인 이유를. 요조의 글이 너무 내 마음 같아서 나는 그의 글을 단박에 이해했다. 어떤 교묘함(솜씨나 재주 따위가 재치 있게 약삭빠르고 묘함)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에세이는 힘이 있다. 나의 어두운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것 중 하나는 누군가의 이야기였다. 누군가 쓴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다시 살아갈 힘을 주었다. 의지가 필요한 일을 단언할 수 없지만, 살아가는 동안 읽는 일을 멈출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 읽으면 만나게 되는 한 사람의 고유한 세계가 너무 풍요롭고 그 세계가 지닌 색채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 세계를 모르고 지냈다면 내 세상은 지금보다는 훨씬 덜 다채로웠을 것을 알기에, 그 세계를 통해 다시 새롭게 열리는 또 하나의 세계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알기에 읽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그것이 글쓴이가 고르고 골라 자신의 삶에 덜 부끄러운 순간들과 빛나는 순간을 모아 놓은 스스로의 윤색된 삶의 기록이라고 해도, 그곳에서 배움을 얻고 살아갈 에너지를 얻고, 희망을 본다면 그의 글은 그것으로 역할을 다 한 것이 아닐까.

 나 역시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견디며 내 안에 쌓인 이야기들을 쓰기 시작했다. 차곡차곡 쌓인 내 안의 이야기들을 풀어 나가고 싶어서. 가끔은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어떤 날은 쓰는 일 자체가 뜨겁게 좋아서, 어떤 날은 쓰는 감(感)을 잃을까 두려워 단순히 그 자체로 썼다. 그렇게 쓰인 나의 삶이 나의 선별에 의해 교묘한 편집을 거친 일들이라 해도 손끝에서 풀어나간 글 속에 숨길 수 없는 마음의 진실은 담겨있음을 안다. 글을 쓰며 내가 치유와 쉼을 얻고 읽는 이에게 약간의 긍정적 감정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나의 쓰기도 맡은 바 쓰임을 다하고 있는 것 아닐까.

 때로 깊은 치부는 제거한 약간의 윤색을 거친 이야기 일 지라도 그곳에 담긴 분명한 진실에는 힘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진실이 담기지 않은 글은 결코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없기에.

 에세이를 향한 사랑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그 애정이 다시 간절해져서 오늘도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흔히 에세이라고 하면 신변잡기에 가까운 수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인식과 삶을 동시에 담아낼 수 있는 그릇으로 에세이만 한 형식이 없다고 생각한다. (중략) 루카치는 일찍이 에세이라는 형식의 가능성을 주목한 적이 있었다. 글의 목표나 대답이 미리 정해져 있는 글이 아니라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과 물음만을 알고 있는 플라톤적 글쓰기라는 것이다.' -나희덕, 책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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