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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Jul 03. 2023

나의 글을 소개합니다.

아마도. 영혼의 소리

 글이 발행되었다. 내가 나를 위해 만든 공간이 아닌 곳에 나의 글이 발행된 것은 글을 쓴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기뻤다. (원문은 이곳:https://www.m-letter.or.kr/post-cont/contens-230630/)

 한 번쯤 나의 글을 소개하고 싶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글을 소개하고 싶었다.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면 이유는 글의 다크(Dark)함이었다. 엄청 밝은 사람이 못 되는 나는 어차피 내가 가진 내면의 밝기를 초월하는 글을 쓰지도 못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글 중 손꼽히게 다크 한 글을 소개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따랐다. 알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에게 망설임 없이 썼었던 어두운 이야기들을 자체 검열 기준에 의해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힘들었던 시간 사는 일에 미련이 없었고, 집에 있는 끈들까지 다 잘라버렸던 날의 자살을 우회적으로 암시하는 일화를 공개해도 될까 생각하니 조금 망설여졌다. 의외로 쓰는 일의 지속성에 대한 불확실성에 따른 민망함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산소 통 하나를 메고 다른 안전장비 없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둡고 깊은, 깊고 깊은 바닷속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상상을. 깊이 아주 깊이... 이따금 나에게 글을 쓰는 일은 그렇게 느껴진다. 끝도 없이 깊고 어두운 마음의 바닷속 안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일. 바깥세상으로 반드시 다시 나오겠다는 열망으로 산소통을 기필코 챙겨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일. 때로는 무엇을 건지겠다는 계획이 있지만, 때로는 무엇을 건져 나올 수 있을지 나조차 모른 채 그냥 들어간다. 글을 쓸 때 매번 그렇게까지 깊이 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발행된 '상실(喪失)에 관하여'라는 글을 쓸 때 나는 내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어두웠던 시절의 이야기 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검열해 본 결과 우려보다는 발행의 기쁨이 앞섰고, 부족한 삶의 경험치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삶의 희망을 말하는 글이기에 지인들에게 글을 공유했다. 해석은 읽는 자의 몫이라 했던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결과는 흘러갔다. 예상했던 방향으로 글이 읽히기도 했지만, 몇몇의 지인들은 어둡고 힘든 시절 나와 함께 해주지 못했던 부채감에 미안해했다. 그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삶의 어느 순간은 혼자만이 감당해야 할 무게가 있기에 누군가의 부채감을 야기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만 나 역시 소중한 사람의 힘든 시간에는 그렇게 반응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드니 그제야 수긍이 갔다. 글을 공유하기 전에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글은 쓰는 사람이 내는 '영혼의 소리'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글을 읽다 보면 가끔 읽힌다. 내가 좋아하고 추구하려 하는 것과 관계없이 나의 영혼이 어떤 소리를 내고 있는지가. 때로는 나조차 몰랐던 깊고 깊은 내 마음속 소리들이. 

 브런치 작가가 될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글을 쓰고자 했을 때, 글의 방향은 나의 군생활과 현재 지내는 일본 생활이 되리라 여기고 계획했다. 글을 쓰며 깨달았다. 내 마음은 자주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가끔 영혼이 내는 소리를 따라가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이 향하는 곳을 알 수 있었다.  

"또 흔히 나는 글재주가 없다, 개성이 없다고 말하는데 많이 써보지 않아서 그럴 수 있다. 나의 삶을 숙고하고 나의 경험을 나의 언어로 말하는 훈련을 반복하기 전에는 '글재주'와 '고유성'은 드러나지 않고 드러날 수 도 없다"(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나는 쓰면서 비로소 알아간다. 나의 고유성과 글재주 그리고 영혼의 소리를 찾는 일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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