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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술북스 Aug 14. 2021

정직하게 살아야 하지만, 꼭 솔직할 필요는 없어

『우리말 어감 사전』을 읽고

정직(正直)과 솔직(率直)의 차이는 무엇일까? 둘 다 ‘거짓 없음’을 뜻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서로 다른 맥락에서 차이를 보인다. 정직이란 윤리적으로 사고하여 올바름[正]을 행하는 것이다. 정직은 “규범성을 함의”(『우리말 어감 사전』, 205쪽)한다. 나는 옳고 그름이 사회적(공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본다. 만약에 이 세상에 타인은 없고 오직 나 혼자만이 존재한다면, 내가 무슨 짓을 하든 그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 따질 수 없는 셈이다. 예를 들어


내가 출퇴근하는 사람들로 복작대는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탈’이고 공연음란죄로 1년 이하의 징역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좀비 바이러스 따위가 퍼져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부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된 세계에서 내가 유일한 생존자로 남게 된다면, 나는 신도림역에서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척 춤을 출 것이다! 핵심은


이렇다. 올바름은 나의 바깥에 있으며, 개인의 주관을 넘어 여러 사람이 객관적으로 동의한 합의의 결과물이다. 이는 정직도 마찬가지며, 따라서 정직함은 함부로 ‘사유화’할 수 없다. 반면에


솔직은 “감추지 않거나 꾸미지 않고 사실 그대로”(『우리말 어감 사전』, 204쪽) 감정을 드러내는 자세다. 그 감정은 오로지 나만이 거느리는[率] 소유물이다. 그래서 함부로 ‘객관화’할 수 없다. 나의 기쁨, 나의 슬픔에 다른 사람이 어찌 동의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나는 지극히 사적인 관계 안에서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으며 공감을 구할 뿐이다. 우리가


꼭 솔직할 필요가 있을까? 감정을 있는 그대로 러내는 일은 마치 발가벗는 것과 같다. 나에게는 수치를, 타인에게는 불쾌감을 줄 수 있다. 어떠한 감정도 보듬을 수 있는 넓은 아량을 지닌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마음씨가 좁은, 혹은 마음씨가 좁지도 넓지도 않은 평범한 상대방에게 구태여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마음을 드러내다가는 서로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더 솔직해지고 싶다. 성격이 나쁜 건지, 나는 친구를 오래 사귀지 못하는 듯하다. 서로 10년 넘게 교우관계를 맺어온 다른 두 친구에게, 너희는 어떻게 그토록 오래 사귈 수 있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다. “선을 넘지 않아서 그래.” 흠… 그렇구나. 나는 속으로 베베 꼬인 생각을 했다. ‘그래도 친구라면, 선을 넘을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친구들을 평가하는 듯해서 말하기 조심스럽고 죄송스럽지만, 나는 걔네들이 서로 정직하긴 하지만 솔직하진 않은 관계를 맺은 것처럼 보였다. 그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가 꼭 솔직할 필요는 없으며, 실제로 나도 솔직하진 않지만 정직한 관계를 좋아한다. 이를테면 직장 상사와 솔직하게 모든 감정을 교류하긴 싫지만, 정직하게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일은 일, 사랑은 사랑…). 그럼에도 한편으로 나는 좀더 솔직해지고 싶다. 스스로 수치를 감내할 용기를 갖길 바라며, 다른 사람들이 나의 불쾌함을 관용해주길 원한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을까? 이런 고민 아래, 이 글에서 솔직하게 한꺼풀, 조금이나마 나를 벗긴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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