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말해주는 출판 이슈
2020년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김봉곤 작가의 소설 「그런 생활」에서 개인의 사생활이 그대로 노출되었다는 고발이 트위터에 등장해 논란이 일었다. 이 소설은 '오토픽션(auto-fiction)'이라 불리는 자전적 소설이며, 여기에는 주인공 '봉곤'과 카톡으로 성적인 대화를 나누고 조언하는 'C누나'라는 인물이 나온다. '다이섹슈얼'이라는 트위터 계정(@kuntakinte1231)은 이 C누나가 본인이며 실제 김봉곤 작가와 카톡으로 나눴던 이야기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소설에 들어가 자신의 사생활이 노출되었다며 문제를 공론화했다.
이후 추가로 '0'(영)이라는 트위터 계정(@hairgym)은 자신이 김봉곤 작가의 데뷔작 「여름, 스피드」에 등장하는 '영우'의 실존 인물이라고 주장하며, 자기 또한 김봉곤 작가에 의해 원치 않게 사생활이 노출되면서 아웃팅을 당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출판사에서는 사과문을 올렸으며, 문제 작품이 들어 있는 책 『여름, 스피드』(문학동네, 2018),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2020년 4월), 『시절과 기분』(창비, 2020년 5월; 「그런 생활」이 수록된 단편집)은 현재 판매가 중지된 상태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주요 사건 일람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2016년 김봉곤 작가 등단.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Auto」가 당선됨.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작가는 등단 이후 동성애를 주제로 한 자전적 소설을 씀.
2017년 7월 문예지 『악스트(Axt)』(은행나무) 13호에 단편소설 「여름, 스피드」가 실림. 「여름, 스피드」는 과거에 주인공과 사랑을 나눴으나 갑자기 어떤 언질도 없이 잠수를 타버렸던 '영우'가 일방적 이별 후 6년만에 주인공에게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하며 시작된 이야기.
2018년 6월 단편집 『여름, 스피드』(문학동네) 출간.
2018년 12월 「여름, 스피드」 등장인물 '영우'의 실존인물인 '0'이 김봉곤 작가에게 문자로 항의함. 자신의 사생활 및 게이라는 사실이 노출되었으며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도 않았다는 점을 따짐. 김봉곤 작가는 사과하며 이런저런 부분을 수정하면 괜찮겠느냐고 물어봄. "마치 조별과제 PPT를 수정하는듯한" 태도에 기가 찬 '0'은 대화를 중단했으며 소설의 내용은 수정되지 않음.
2019년 5월 『문학과사회』 126호에 단편소설 「그런 생활」이 실림. 작품을 발표하기 전에 김봉곤 작가는 작중 'C누나'의 실존인물인 '다이섹슈얼'에게 작품에 당신을 등장시켜도 되냐고 물음. 다이섹슈얼은 어느 정도의 가공을 예상하고 허락했으나 이후 하나도 고치지 않고 대화 내용을 그대로 베낀 것을 확인. 김봉곤 작가에게 항의했고 작가는 수정을 약속했으나, 『문학과사회』에는 수정되지 않은 채로 실림.
2020년 1월 제11회 젊은작가상 심사 및 수상작 언론 발표. 「그런 생활」도 수상작 중 하나.
2020년 4월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 출간
2020년 5월 1일 「그런 생활」이 담긴 단편집 『시절과 기분』(창비) 출간
2020년 5월(★) 다이섹슈얼이 김봉곤 작가와 출판사들(문학동네, 창비)에 항의. 처음에는 김봉곤 작가에게 "출판사를 통한 사과가 어려우면 개인 SNS를 통한 사과라도 해주기를" 요청했으나 무시당함. 변호사를 선임한 다음에야 작가는 원고를 수정. 그러나 수정 사실을 공지해달라는 요청은 계속 무시됨.
<문학동네의 경우>
5월 6일 작가로부터 문제 상황을 전달받은 문학동네는 다이섹슈얼에게 확인을 받아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내용을 수정, 전자책의 경우 즉시(5월 8일) 수정 사항을 반영했으며 종이책은 6쇄(5월 28일 발행)부터 반영.
5월 8일 다이섹슈얼로부터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 「그런 생활」 삭제 및 수상 취소 요청'이라는 내용증명을 받음. 그는 작품에서 자신이 등장한 부분을 삭제하고 새로 고쳐쓸 것을 요청하고, 수상을 취소하며 그 이유를 공지할 것도 요구함. 젊은작가상 심사위원들은 고쳐 썼더라도 전체 작품을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라고 의견을 냄(수상을 취소하진 않음).
5월 12일과 22일 문학동네는 다이섹슈얼에게 내용이 수정되었음을 알리고 도서 배포 경과와 심사 결과에 대한 위원들의 판단을 전하는 답변서를 보냄. 다만 "사용 허락 과정과 수정 이유에 대한 당사자의 주장과 작가의 주장이 일치하지 않는 사안"이라며 수정 사실을 공지하지 않음.
<창비의 경우>
5월 6일 작가로부터 문제 상황을 전달받은 창비는 단편집 『시절과 기분』에 들어간 단편 「그런 생활」의 본문을 즉시 수정. 수정 사항은 종이책 3쇄(5월 11일 발행)부터 반영
5월 8일 다이섹슈얼로부터 “『시절과 기분』에서 「그런 생활」을 삭제하거나 새로이 고쳐 쓴 글로 싣고 이를 출판사를 통해 공지한다”는 요청을 담은 내용증명을 받음. 창비는 "작가와 귀하의 의견교환과 협의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수정 사실을 공지하지 않음.
2020년 7월(★) 문제가 일파만파 퍼짐.
<공론화>
7월 10일 다이섹슈얼이 트위터를 통해 문제를 공론화함.
7월 11일 김봉곤 작가는 SNS에 해명글(사과문)을 올림. 다이섹슈얼이 주로 「그런 생활」의 소설적 완성도를 거론했기에, 작가는 다이섹슈얼의 코멘트를 항의와 수정 요청이 아닌 소설 전반에 대한 조언으로 이해했다고 함.
7월 14일~17일 문학동네와 창비는 입장문과 사과문을 발표하고 후속조치(수정 사실 공지, 수정되지 않은 판매분을 수정본으로 교환)에 대해 공지
7월 17일 「여름, 스피드」 등장인물 '영우'의 실존인물인 '0'가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문제 또한 공론화함(2016년 7월에 '0'이 김봉곤 작가에게 보낸 페이스북 메시지 공개). 앞선 다이섹슈얼의 공론화를 보고 '때가 왔다'고 생각하며 이후 김봉곤 작가의 사과문을 보고 뻔뻔함을 느껴 공론화를 결심함. 김봉곤 작가는 사과문에서 "타인과의 대화를 무단으로 절취해 타인의 삶을 착취했다는 식의 판단은 가혹하다"고 주장. 곧이어 문학동네와 창비에서는 문제시된 작품이 실린 책들의 판매를 중지하고 그 사실을 공지함.
(지금부터는 저의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소설가랑 친하게 지내면 안 된다"라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자신의 삶이 소설의 재료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하라는 농담이다. 설마 그 농담이 이런 논란으로 나타날 줄이야…. 타인의 삶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인용한 작가도 문제지만, 나는 출판사의 파렴치함을 지적하고 싶다. 무엇이 문제인지 당사자(고발자, 피해자)를 통해 확인하고 작가와도 이야기해서 소설의 내용을 수정했음에도 이 사실을 공지하지 않은 건 당사자는 물론 독자를 기만한 행위다.
당사자가 개인정보 누출로 인해 n차 피해가 일어날 것을 우려해 수정 공지를 꺼렸다면 모를까, 당사자 또한 공지를 요청했음에도 출판사가 그렇게 하지 않은 건 아마도 '공지로 인해 매출에 악영향이 갈 것'(문제가 크게 확산되어 논란이 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당사자가 SNS로 문제를 공론화하자 그제서야 출판사들은 수정 사실을 공지하고 이미 배포된 기존 도서를 새것으로 반품·교환하겠다는 공지를 올렸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고 일을 크게 벌렸다(결국 판매 중지까지 갔으니). 분명히 수정을 해놓고서는 뻔뻔하게 "당사자의 주장과 작가의 주장이 일치하지 않는다"든가 "작가와 당사자의 협의가 우선되어야 할 거라고 판단하고… [그러나] 이후로 추가적인 요청이 전달되지 않았다"며 수정 사실을 숨겼다. 만약 당사자와 작가의 주장이 일치하지 않았으면 애시당초 수정 자체를 하지 말든가. 세세한 부분에서의 불일치야 있겠지만, 어쨌든 소설의 내용을 수정했다는 것은 당사자의 주장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어느 정도'에 대해서라도 출판사는 공지를 해야 했다. 게다가 당사자는 수정 사실을 공지하라고 명확하게 요청했는데, 이보다 우선되어야 할 '작가와 당사자의 협의'가 도대체 뭘까? 수정 사실을 바로 공지하지 않고 협의를 하면 당사자가 무슨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안타까운 사건이다. 다만 이 사건이 단순히 '작가와 출판사의 사과'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오토픽션에서 타인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난 문제도 아니다(공지영 작가의 「즐거운 나의 집」도, 재일동포 소설가 유미리의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도, 칼 오베 크라누스고르의 「나의 투쟁」도, 각각 조금씩 다르지만 자전적 소설로서 논란이 되었다). 더욱이 소설이 아무리 허구라고 해도 기본적으로는 현실이 어느 정도 반영될 수밖에 없다. 작가 개인의 삶, 작가와 얽힌 타인들의 삶이 소설로 각색되어 나올 때 발생하는 "글쓰기의 윤리적 위험"은 필연적이다. 그 위험을 어떻게 돌파할지,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이 깊어진다.
“하지만 타인과 연루된 체험을 자기화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글쓰기의 윤리적 위험’은 과연 돌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일까. 어쩌면 그건 자신의 삶을 글쓰기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허방 같은 것이 아닐까. 동서양을 막론한 수많은 스캔들 – 저 작품 속 누구는 사실 누구누구를 빗댄 것이고 저 작품 속 누구도 실은 누구누구를 비꼰 것이고 저 대목은 실제 누가 한 말을 따라한 것이고 등등 –을 생각해보면 이 위험은 돌파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평생 안고 가야 할 동반자에 가깝지 않나. 그러니 김봉곤은 자신이 그와 같은 글쓰기를 선택한 이상 이런 위험에 대해 예민하게 의식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태의 추이를 보건대 그는 그 점에 분명 미흡했던 것 같다. …
논쟁은 다시 이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 이 문제는 김봉곤 개인의 일탈도 아니고 김봉곤을 비호해 온 문단 카르텔의 정체를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도 아니다. 소설을 읽고 그것에 대해 쓰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건 삶과 문학의 번역 과정에 대한 고유의 문제가 김봉곤이라는 작가의 작업을 통해 육화된 것에 가깝다. 어떤 문학도 삶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주장은 어떤 국면에서 커다란 호소력을 가지며 일견 타당한 듯 보이지만 문학과 삶 사이에 놓인 ‘목숨을 건 도약’을 해명하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한영인_문학평론가)
(2020년 7월 20일 『악스트』 13호와 『문학과 사회』 126호도 판매가 중지됨.)
김봉곤 작가 고발 트윗 1: 「그런 생활」 등장인물 'C누나'의 실존인물, 2020.7.10.(작성자: 다이섹슈얼 @kuntakinte1231)
https://twitter.com/kuntakinte1231/status/1281501681042120709
김봉곤 작가 고발 트윗 2: 「여름, 스피드」 등장인물 '영우'의 실존인물, 2020.7.17.(작성자: 0 @hairgym)
https://twitter.com/hairgym/status/1284026531065393152
문학동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unhak
창비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changbi
「김봉곤 '그런 생활' 사생활 노출 논란 ... 인용의 윤리 묻다」, <한국일보>, 2020.7.13.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71315540001681
김은형, 「[유레카] 오토픽션과 사생활 침해 / 김은형」, <한겨레>, 2020.7.15.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53753.html#cb
한영인 페이스북, 2020.7.18.
https://www.facebook.com/youngin.han/posts/3248856025172935
2016 동아신춘문예 당선작
http://www.donga.com/docs/sinchoon/2016/index.html
『악스트 Axt 2017.7.8.』 도서 정보
『문학과 사회 126호 – 2019.여름(본책+하이픈)』 도서 정보
『여름, 스피드』 도서 정보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도서 정보
『시절과 기분』 도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