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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술북스 Jul 26. 2020

나다움을 찾지 마세요

자존감의 역설

"마음의 병은 실체가 없어서 잘 알 수 없지만, 몸을 상처 입힌 아픔은 알기 쉬워서 안정이 돼"
(『너무 외로워서 레즈비언 업소에 간 리포트』, 2018).


7년 전, 한때 자해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빠졌었다. 아니, '하고 싶다'는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고 했을 때, '먹고 싶다'는 욕망보다는 '죽고 싶다'는 절박함에 가까웠다. 어릴 적에 고열에 시달리는 나를 정성스럽게 간호해준 엄마를 떠올리며, '내가 눈에 보이는 상처를 입으면 지금 하는 일들과 고민들을 다 내팽개치고 따뜻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겠지?'라는 영악한 생각을 했다. 더더욱 영악했던 건 상처를 입되 너무 심해서 평생의 심각한 장애(불편함)로 이어질 만한 것을 피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손바닥을 식칼로 긁거나, 좀더 나아가서 잘 쓰지 않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자르는 정도…를 머릿속에서 상상했다(과감하게 배를 찌르는 상상도 했는데, 그랬다간 죽고 말 거야).


너무 낮은 학점을 받아서 학사경고를 받고, 그로 인해 강제로 1년 휴학을 당한 때였다. 공부에 소질도 흥미도 없었던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고민하며 삶의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집에서 빈둥거릴 수만은 없었기에 6개월 단기근무로 하수처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생활하수, 공장 폐수, 지하수 등에 담긴 각종 오염물이 거대한 처리시설에서 걸러지는데, 장치가 노후했던 건지 오염물이 너무 많아서 그랬는지 마치 꽉 막힌 변기처럼 오염물이 배관을 타고 흐를 생각을 안 했다. 가끔은 꽉 막힌 그것이 뿜어져 나와 시설 바닥에 널브러져 있기도 했는데, 그걸 삽으로 퍼서 다시 장치에 집어넣거나 옆으로 치우는 일을 했다. 냄새가 참 독특했다. 음식물 쓰레기 냄새처럼 자극적으로 콱 쏘기보다는 은은하게 속을 뒤집는 냄새였다. 바싹 말라버린 잿빛의 오염물 덩어리를 툭툭 건드리면 먼지가 일듯 풀썩하고 흩날리는 가루가 햇빛에 비쳐 보였는데, 이게 내 콧속으로 들어오는구나 싶었다.


학교 동아리에서 취미로 추던 춤을 좀더 배우고자 춤 학원을 찾아갔다. 꾸준히 레슨도 받고 학원 연습실에서 개인 연습을 하던 나를 눈여겨보셨는지, 당시 내가 '스승님'이라고 부르던 학원 원장님께서 같이 새벽 연습을 하자고 제안하며 나를 본격적인 댄서의 길로 이끌고 가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댄서를 꿈꾼 적도 없으며 (예나 지금이나) 춤을 잘 춘다고 생각하지 않는 나는 그때 그 제안을 거절했어야만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후회한다). '이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낮에는 알바를, 밤에는 춤 연습을 하면서 사실상 24시간 동안 잠을 거의 안 자는 생활을 잠시 했다. 새벽 연습을 마친 다음 아침에 지하철 첫차를 타고 집에 돌아올 때면 거의 항상 졸았는데, 열차가 종착역을 지나면 어떻게 되는지 그때 처음으로 경험하기도 했다(뭐, 별거 없다. 잠시 멈췄다가 반대 방향으로 다시 운행을 시작할 뿐이다). 그리고 다시 아침에 하수처리장으로 출근. 일하다가 너무 졸려서 힘을 낼 수 없을 때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문을 잠그고 잠시 눈을 붙였다.


나중에 휴학이 끝나고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됐을 때, 나에게 댄서의 삶을 강제하던 스승님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모든 연락을 씹었다(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기숙사가 있는 학교여서 이런 도망이 가능했다). 무례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계속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너무나 벗어나고 싶었고, '아, 그래도 죄송하다 말씀은 드려야 하는데' 생각하면서도 오히려 그 미안함 때문에 도저히 연락을 할 수 없었다(원망과 죄송스러움이 공존했다. 지금도 이때의 경험은 아픈 손가락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스승님은 지금 어떻게 지내실까? 듣기로는 자기보다 한참 어린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지금 감옥에 가 있다고 한다. …….


어쨌든 중고등학생 때도 겪지 않았던 때아닌 질풍노도를 경험했다(흔히 '대2병'이라고 하던데). 그때 당시 머릿속에 가득했던 자해가 참 다행히도 상상만으로 그칠 수 있었던 이유는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회의했기 때문이다. 자해를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아주 단순한 깨달음 덕분에, 그리고 자해를 하면 오히려 정신적 고통에 육체적 아픔만 더해질 뿐이라는 판단이 있었기에, 칼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철학자 알베르 카뮈의 표현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삼인칭적·객관적·관찰자적인 관점을 버리고 일인칭적·주관적·실천가적 관점에서 본능과 충동에 몸을 맡기는 것을 '철학적 죽음'이라 할 수 있는데(『인간의 우주적 초라함과 삶의 부조리에 대하여』, 필로소픽, 2019), 당시의 나는 철학적으로 죽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다산초당, 2019)라는 (허접한) 베스트셀러가 떠오른다. 뭐, 철학이 정말로 무기가 되어주는지는 모르겠다만,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힘은 있는 것 같다.


1~2년 전쯤에 어떤 누나와 같이 밥을 먹던 중에 이런 말을 들었다. "○○아, 너는 자존감이 높구나." 내가 정말로 그런지 의문이 든다(지금도 걸핏하면 "난 쓰레기야"라고 속으로 외친다). 만약 내가 자존감이 높다면(높아 보인다면), 그건 아마도 대2병으로 힘들어하던 시기의 경험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 경험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으며 오히려 겪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긴 하지만, 당시의 깨달음은 분명 유익했다. 일인칭에서 벗어나 삼인칭적 시각을 갖는 것,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나를 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사실 자존감은 어딘가에서 찾으려고 해도 찾아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춤을 추는 게 나다운 거야'라며 다른 무언가로부터 자존감을 고양하고자 한다면, 그 '자존감'은 사실 자존감이 아니라 '타존감'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자존감인지 뭔지를 발견하려면 결국 나의 밖이 아니라 안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만약 질풍노도의 시기에 내가 주관적인 관점만을 갖고 있었다면 나는 오히려 더 깊은 우울의 수렁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 누나는 "나는 자존감이 너무 낮다"며 힘들어했다. 흠… 내가 그분의 삶에 대해서 감히 이래라저래라 조언하는 건 주제넘은 일이라 생각해 말을 아꼈다. 다만 어느 날엔가 래퍼 저스디스와 팔로알토의 합작 앨범을 듣던 중 그 누나가 생각나서 「4 the Youth」라는 노래를 추천해줬다.


 <무선혜드셋 정보툰!!>이라는 웹툰에서 「과학의 악마 이야기」를 설명한 편이 있다. 거기서 '데카르트의 악마'라는 유명한 철학 사고실험이 소개된다. 나는 '내가 지금 여기에 있음'을 어떻게 아는가…. 거울을 보거나 팔로 만져보거나 자신의 목소리를 듣거나 자기의 냄새를 맡으면서 알아차릴 것이다. 그런데 내가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길 바라는 데카르트의 악마가 나타나서 나의 모든 감각을 빼앗아간다. 나는 투명인간이 되고 피부 감각도 사라지고 목소리를 낼 수도 없으며 무취의 인간이 된다. 그렇게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며 나의 존재에 의문이 들 때쯤, '난 존재하지 않는 거 같은데'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을 깨닫게 된다. 그래, 나는 생각을 하고 있잖아!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도 이와 비슷한 듯하다. 악마가 나를 하나하나 지우듯이 스스로를 버리면서 객관적으로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럼에도 버려지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함을 깨달을 수 있다(허무주의에 빠지는 것만 주의하면 된다). 그 무언가를 믿음으로써 나다움이 구체화되고 자존감이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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