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순수 오해를 넘어서 실은 문제는, 내적 권위를 형성하는 도덕성의 근거를 주체 이성에 포커싱한 칸트를 비롯한 이성중심적 양심주의자에게 원인이 있다. 헤겔은 당시 주류의 견해를 바탕으로 통일적 사유를 선보였을 뿐이므로 그의 종합론 사변은 책임이 없다.
내 이야기에서 말하던 자기 존재로 흘러가 실존을 전망하는 성찰, 경험들의 본질계에 대한 재정렬 의식, 본질에 대응하는 존재자를 바탕하는 현실적 존재와, 이 현존재 자체에 상응하며 전체 본질계를 아우르는 것으로서 존재자성의 본질, 태초에 존재성과 아울러 발생하여 본질계를 묶어낸 그 단일한 존재성을 대면해 바라보아 성찰 의식의 주관이 되는 기초본질로서 자유, 본질과 존재 사이 순환하는 삶을 영위하는 인간의 정사면체 형상 운동을 보면 가능하듯이, 자유와 재정렬된 법칙성의 본질체계는, 후에 구체화되고 현실성을 갖추는 관념적인 추상성의 양태를 갖는 게 아니라 생활세계에서부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본질의 우연적 발출과 오성 및 이성 활동이 연속되면서 확장적인 진화에 따라 자기 현존재 간 본래적 괴리로 인해 심화하는 추상성과 담보되는 결과론적 오류성을 존재론적인 반성을 통하여 해소함으로써 대면하는 본래 존재와 아울러 참으로 실현되고, 사유를 비롯한 행위의 바탕체가 되는 동적이고 원천적인 시원의 본질이다. 반면에 윤리, 법률 지식이 많더라도 사이코패스이면 부도덕한 행위 지향 습성을 가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준칙을 제공하는 성찰 의식 발현의 습성을 담보하는 현상계 기관이 손상되어 거의 부재하다시피 때문인데, 이는 관념-본질 의식과 성찰 의식이 기원은 공유해도 서로 운동 과정의 궤도가 다르다는 상이성을 함축한다. 과정은 진전하면서 존재의 고밀을 달성하고 축적된 모든 본질은, 자신보다 앞서 지어져 지탱하는 현실 존재에 근접한 상태로 그 전체가 함께 변화함으로써 존재 운동 이전과 달리 현실화되고 구체성을 가진다. 이처럼 변화무쌍한 재정립을 거쳐 기존 보다의 현실적이고 구체적 경험 사상을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오류가 적은 행위 준칙과 상응하는 공리 아래 도덕 판단과 실천을 행할 수 있다면, 인간 스스로 자율적으로 통제하는 자들이 외재적 질서로서 공동의 법을 심의하여 제정해 사회를 꾸리는 자격이 온전히 충족되는 결말이다.
이같이 도덕성에 대한 추상적 접근을 넘어 근원적인 의식의 접근을 통해 가꾼 내적인 덕성을 가지는 이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다. 기초철학의 흐름을 이어, 공동체를 통로 삼아 자신 존재로 나아가고 혹은 개인의 문제에서 고립된 이가 집단적 융합에 참여해 공동체의 존재로 나아가는 그리고 그렇게 발전과 충만을 누리려고 나아게끔 체계화하는 공동의 정신을 '진존(進存)의 인륜성'이라 정의한다. 이 개념은 개인의 자유 보전이나 실현을 위해 집단으로의 필연적인 종속을 낳지 않는다. 집단에 대한 관여는 본질 이전부터 있던 존재의 충만을 적극적인 확장 탓에 잃을 수도 있는 위기의 주시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부푸는 존재성의 본질과 엮어, 존재 자체 실현을 유지하는 대전제 아래서 유의미한 결국 순수 개인의 행위이다. 또한, 집단과 개인 간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관여가 경험을 쌓고 존재를 실현하고 유지하는 데 쓰이는 방법이라면, 주관이 자유에 따라서 필요를 판단하고 결정해 갈 수 있는 삶의 활로이기 때문이다.
측면에 천착된 옛 사고양식을 버리고 마치 새로 태어난 듯한 아기의 정신을 지닌 우리가 공동체와 참여, 공공의 정치, 최선의 체제를 찾아가는 본 글은 신 정치논고 여정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