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殺人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만큼, 뭔가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단어일 것입니다. 남의 칼을 빌려서 죽인다는 게슴츠레한 차도살인借刀殺人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청부살인을 종용하는 건 아니니 안심하세요.
모 중소기업의 마케팅 담당 부서엔 5명의 직원이 있었습니다. 행동력은 있지만 생각의 깊이가 부족한 김 부장, 일처리가 안정적이지만 틀에 박힌 꼰대였던 황 차장, 생각이 깊어 신중하지만 우유부단한 유 과장,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실속이 없는 정 대리, 스펙은 훌륭하지만 배우는 속도가 너무 느리고 아집은 쎈 오 사원으로 구성된 소집단이었죠.
한해 동안의 업무 데이터가 묶인, 그들의 저조한 업무 실적이 연말 아침부터 상부에 보고되었습니다. 두세 건의 마케팅 기획안은 모두 실패였죠. 김 부장은 상부의 압박을 받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과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부분이 없는 유 과장이 조직의 골칫덩어리라는 판단이었죠.
한 배를 탄 다섯 명의 직원들은 사실 내부적인 분열이 있었습니다. 김 부장은, 입사 동기인 황 차장과 성향이 잘 맞는 정 대리하고는 매우 친밀했습니다. 또한, 그들이라면 적극적으로 일을 도와주고 의견을 지지해주었죠. 편애했습니다. 반면에, 오랫 동안 사적인 교류마저 피한 유 과장과, 둘을 가르치면 넷을 잊어버릴정도로 답답한 오 사원과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습니다. 너무 싫어했죠.
유 과장 또한, 입장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직의 실적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김 부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편을 가르는 리더쉽 성향이 조직의 내부 활성화에 악영향을 주었고 부서의 장은 실격이라고 여기고 있었죠.
유 과장은 회사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연이어 피며 한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회사의 대표였던 홍 사장과 마주쳤습니다. 홍 사장은 그에게 라이터를 빌려달라고 청했습니다. 자기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다시 돌려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려운 사정이 있다면, 내게 다 이야기해주게. 가정의 대소사라도 말이야."
실적 발표도 그렇고, 대표를 우연히 마주친 일 등으로 그날 생각이 많던 유 과장은 퇴근한 이후, 소파에 몸 뉘었습니다. 결단은 어렵지만 가장 직관적인 방법 하나를 바로 이 때에 떠올립니다. 본인의 상사이면서 김 부장의 상사인 홍 사장에게 모두 일러바치고 대표단의 인사 권한으로 말미암아 그의 퇴출을 제안하는 일이었습니다. 기업의 성과를 해칠 정도로 조직의 분위기를 흐린다는 점과 이를 증명하는 구체적인 근거를 내세울 작정이었습니다.
다음날, 유 과장은 야근 도중에 탕비실에서 오 사원을 불러 긴밀한 회담을 나누었습니다. 김 부장이 주도한 부당 행위들을 공유하고 자료화했습니다. 문자, 전화기록, 회의기록, 업무일지 등 부당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정보라면 모두 긁어 모았습니다. 일주 후, 다 정리된 자료를 회사 대표단에 제출했죠.
회사 대표단은 공동 검토를 통해서 마케팅 부서 김 부장의 해고를 결정합니다. 일처리에서의 가벼운 실책 때문이 아니라 부장의 개인적인 성향 자체가 부서에 악영향을 주어 부서의 실적에, 확장하면 기업의 총실적에 해를 주었다는 판단의 결과였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중소기업의 회사에서 마케팅처럼 초기의 기획 영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막중하다는 사고였죠.
그리고 대표단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직의 문제를 양심에 따라서 내부고발한 유 과장까지 해고시킵니다. 둘 사이의 뿌리 깊은 갈등과 조직의 악화에 있어 유 과장의 개인적인 성향이 공통원인이 되는 건 물론, 본인들의 직접적인 문제임에도 우유부단한 기질로 지나치게 해결 시간이 지체되었다는 책임을 물은거죠.
빼도박도 못하는 명료한 증거 자료로 인해서, 항명할 용기조차 없음으로 인해서, 체념한 둘은 자기 짐을 결국 정리합니다. 홍 사장은 회사에서 떠나는 발자취들을 빤히 지켜보네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뱉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