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정의: "뭘 만들 것인가"는 여전히 인간의 몫
지난 챕터에서 AI와 함께 생각하는 법을 이야기했습니다. 목적을 전달하면 결과물이 달라지고, 그 과정에서 내 생각도 명확해지고, 막힐 때는 AI에게 질문을 부탁하면 된다고요.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에는 전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뭘 만들 것인가"가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것인데요.
제가 만든 커플 검사 서비스 이야기를 계속 했었죠. 그런데 이 서비스를 만들기로 결정한 건 누구였을까요?
AI가 아니었습니다. 저였어요.
"결혼을 앞둔 커플들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 이 생각은 어디서 왔을까요?
주변 친구들의 결혼 준비 과정을 보면서, 커플 상담 사례들을 접하면서, "이런 게 있으면 도움이 되겠다"는 감각이 생긴 거예요.
AI한테 "뭐 만들면 좋을까?"라고 물어본 적도 있습니다. 돌아온 답은 뻔했어요. "헬스케어 앱, 생산성 도구, 교육 플랫폼..." 틀린 말은 아닌데, 그냥 일반적인 리스트였습니다. 지금까지 저와의 대화 맥락에서 제 전공과 관심사를 유추하여 답을 해줬음에도, "이거다!" 싶은 건 없었어요.
반면, 커플 검사는 제가 AI와 이전에 상담한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주제였어요. 결혼에 관심있는 나이가 되니 주변에서 들리는 말들이 많아져 새롭게 문제를 발견하게 된 것이죠.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습니다.
문제 해결은 정해진 문제를 푸는 것입니다. "커플 검사 UI 만들어줘", "리포트 구조 잡아줘", "이 버그 고쳐줘". 이런 건 AI가 정말 잘합니다.
문제 정의는 어떤 문제를 풀지 정하는 것입니다. "결혼 앞둔 커플에게 필요한 게 뭘까?", "이 시장에서 빠진 게 뭐지?", "내가 풀고 싶은 문제가 뭐야?". 이건 AI가 아직은 잘못합니다. 잘 못하는 이유는 이들에게 동기나 욕구가 (적어도 아직은) 부재하기 때문인데, 이건 조만간 다른 글에서 다뤄보겠습니다.
AI는 뛰어난 요리사와 같습니다. 어떤 재료를 주든 맛있게 요리해줘요. 한식을 시키면 한식, 양식을 시키면 양식. 그런데 오늘 저녁 메뉴를 정해주진 않습니다. 메뉴는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구가 있는 인간 손님이 골라줘야 해요.
창의성 연구에서 오래전부터 논의된 주제가 있습니다. Problem Finding vs Problem Solving. 문제 발견과 문제 해결의 구분이에요.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진짜 창의적인 사람들의 특징은 "문제를 잘 푸는 것"이 아니라 "좋은 문제를 찾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인슈타인도 이런 말을 했죠. "문제를 푸는 데 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55분은 문제를 정의하는 데 쓰고 5분만 푸는 데 쓰겠다."
AI 시대에 이 능력의 가치가 더 올라갑니다.
왜냐하면 문제 해결은 AI가 대신해줄 수 있거든요. 코드 짜기, 디자인하기, 글 쓰기, 분석하기. 이런 것들은 점점 AI가 잘하게 됩니다.
반면 "무엇을 만들 것인가", "어떤 문제를 풀 것인가"는 여전히 인간이 정해야 해요.
이렇게 생각하면 역할 분담이 명확해집니다.
AI가 해결을 담당하면, 인간은 정의에 집중할 수 있어요. 예전에는 문제를 정의하고 나서 해결까지 직접 해야 했잖아요. 기획하고, 만들고, 수정하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가 분산됐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 해결 과정의 상당 부분을 AI에게 맡길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뭘 만들 것인가"에 더 집중할 수 있어요.
오히려 문제 정의의 중요성이 커진 거죠. 같은 상황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효과적으로 문제 정의를 정의하는 방법에 대해 다뤄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