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미루겠지" 그 예감이 맞아떨어지는 이유

예상이 현실을 만든다

by 사심가득

"뭐... 오늘도 이 일을 미루겠지...."


이 생각, 해본 적 있을 것이다. 예정했던 마감 기한을 앞두고 마음 한편에서 올라오는 예감. 그리고 실제로 미룬다. "역시 나는 그렇지." 예감이 맞아떨어졌다고 느낀다.


그런데 정말 예감이 맞은 걸까? 아니면, 그 예감이 미뤘다는 결과를 만들어낸 걸까?


심리학에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 있다.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 부른다. 근거 없는 믿음이 행동을 바꾸고, 그 행동이 결과를 만들어내고, 그 결과가 원래의 믿음을 "맞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현상이다.




기대가 현실을 만든다

자기충족적 예언을 처음 실험으로 증명한 사람은 하버드의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로젠탈(Robert Rosenthal)이다. 1968년,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공립 초등학교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학기 초에 모든 학생에게 지능검사를 실시한 뒤, 연구진은 교사들에게 일부 학생 명단을 넘기며 "이 학생들은 올해 지적 성장이 급격히 일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그 명단은 완전히 무작위로 뽑은 것이었다.


학년이 끝난 뒤 다시 지능검사를 했더니, 명단에 올랐던 학생들의 IQ 점수가 실제로 더 많이 올라가 있었다.


교사들이 "이 아이는 잘할 것"이라고 믿었고, 그 믿음이 무의식적으로 행동을 바꾼 것이다. 명단에 올라있는 학생들에게 더 따뜻하게 대하고, 더 많은 피드백을 주고, 더 도전적인 과제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는 근거 없는 믿음이 행동을 만들고, 행동이 현실을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긍정적 기대가 현실이 된다면, 부정적 기대도 현실이 될까?




낮은 기대가 사람을 파괴하는 방식

1982년, 엘리샤 바바드(Elisha Babad)와 야신토 인바르(Jacinto Inbar)는 로젠탈의 연구를 부정적 기대 맥락에서 다시 한번 검증했다.


연구진은 먼저 교사들의 '편향 감수성'을 측정했다. 방법이 독특했는데, 학생들이 그린 그림을 채점하게 하면서 "이 그림은 우수 학생의 것"이라거나 "부진 학생의 것"이라는 거짓 정보를 함께 제공한 것이다. 같은 그림인데도, 이 정보에 영향을 받아 점수를 크게 다르게 매기는 교사들이 있었다. 연구진은 이들을 '편향이 높은 교사(high-bias teachers)'로, 거짓 정보에 흔들리지 않고 일관되게 채점한 교사들을 '편향이 낮은 교사(low-bias teachers)'로 분류했다.


그다음, 이 교사 26명에게 학생 202명을 가르치게 했다. 학생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었다. 첫째, 교사가 직접 "이 학생은 잘할 것"이라고 지목한 학생들. 둘째, 교사가 "이 학생은 기대가 낮다"고 지목한 학생들. 셋째, 연구진이 무작위로 선정해 교사에게 "높은 잠재력이 있다"고 알려준 학생들.


결과는 선명했다. 편향이 높은 교사들은 자신이 기대가 낮다고 판단한 학생들에게 눈에 띄게 다르게 행동했다. 더 독단적으로 대했고, 덜 친절했으며, 피드백을 적게 제공했다. 질문에 답할 시간도 덜 줬고, 칭찬은 줄었으며, 실수에 대한 반응은 더 냉담했다. 이런 학생들의 수행 능력은 다른 그룹에 비해 유의미하게 떨어졌다.


반면, 편향이 낮은 교사들은 세 그룹의 학생 모두를 비슷하게 대했다. 기대가 높든 낮든, 행동에 차이가 거의 없었다. 당연히 이들의 학급에서는 눈에 띄는 격차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 현상에 골렘 효과(Golem effect)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대 전설에 나오는 골렘은 흙으로 빚어진 인조 인간으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결국 파괴되어야 했다. 낮은 기대도 마찬가지다. 학생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그 학생의 가능성을 파괴한다.




자기 자신에게 거는 골렘의 주문

앞선 두 연구는 "타인의 기대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타인의 기대가 나를 바꿀 수 있다면, 나 자신의 기대는 어떨까?


"이번에도 미루겠지"라는 생각은, 나 자신에게 거는 낮은 기대다. 스스로에게 골렘 효과를 적용하는 셈이다.

이 기대는 행동을 바꾼다. "어차피 미룰 거"라고 생각하면, 과제를 시작하기도 전에 에너지가 빠진다. 준비를 덜 하고, 계획을 대충 세우고, 마감을 가볍게 여긴다. 그리고 실제로 미룬다.


미루고 나면? "역시 나는 이래." 원래의 믿음이 강화된다.


믿음 → 행동 → 결과 → 믿음 강화. 자기충족적 예언의 구조가 완성된다. 바바드의 연구에서 편향이 높은 교사가 학생에게 했던 것을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뇌는 "내가 옳다"는 증거만 모은다

여기서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요소가 하나 있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자기 믿음에 맞는 정보만 주목하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축소하는 경향이다.


이 편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1979년, 스탠포드 대학교의 심리학자들이 사형제도에 대해 강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모았다. 참가자의 절반은 사형 찬성론자였고, 나머지 절반은 반대론자였다.


연구진은 두 그룹 모두에게 동일한 연구 두 편을 읽게 했다. 하나는 사형제도가 범죄 억제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였고, 다른 하나는 효과가 없다는 연구였다. 정확히 같은 자료를 읽었다. 찬성 근거와 반대 근거가 공평하게 제시되었다.


그런데 연구 결과, 같은 자료를 읽었는데도, 양쪽 모두 자기 입장이 더 강화되어 나왔다. 찬성론자들은 사형이 효과적이라는 연구를 "잘 설계된 연구"로, 반대 연구를 "방법론에 결함이 있는 연구"로 평가했다. 반대론자들은 정확히 반대로 평가했다. 동일한 증거를 봤는데 양극화가 더 심해진 것이다.


즉 사람들은 자기 믿음에 맞는 증거를 볼 때는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자기 믿음에 반하는 증거를 볼 때는 온갖 이유를 찾아 깎아내린다. 이 과정은 의도적이지 않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확증 편향이 자기충족적 예언을 확고하게 만든다

우리의 미루기 믿음에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나는 일을 잘 미루는 사람이야"라고 믿으면, 뇌는 그 믿음에 맞는 증거를 적극적으로 수집한다. 미룬 날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역시 나는 이래." 반면 미루지 않고 바로 시작한 날은? 스탠포드 실험의 참가자들이 반대 증거를 "방법론에 문제가 있다"고 깎아내렸던 것처럼, 우리도 그날을 "그냥 컨디션이 좋았을 뿐", "그 일이 원래 쉬운 거였어"라고 축소한다.


확증 편향은 미루기의 자기충족적 예언을 굳힌다.


1단계: 믿음이 생긴다. "나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야."

2단계: 믿음이 행동을 만든다. 준비를 덜 하고, 시작을 미룬다.

3단계: 행동이 결과를 만든다. 실제로 미룬다.

4단계: 결과가 믿음을 확인한다. "역시 나는 이래."

5단계: 확증 편향이 반증을 차단한다. 미루지 않은 경험은 "예외"로 처리된다.


이 구조가 한번 자리를 잡으면, 빠져나오기가 매우 어렵다. 믿음이 결과를 만들고, 결과가 믿음을 강화하고, 강화된 믿음은 반증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바바드의 실험에서 편향이 높은 교사들이 자기 판단이 '정확하다'고 확신했던 것처럼, 우리도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확신에 갇히게 된다.




"이번에도 미루겠지"는 예측이 아니라 '설계도'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이번에도 미루겠지"라는 생각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 생각이 미루기를 '설계'한 것이다.


골렘 효과가 보여주듯, 낮은 기대는 행동을 바꾸고 현실을 만들어낸다. 확증 편향이 보여주듯, 한번 형성된 믿음은 반증을 차단하면서 굳어진다.


그러나 바바드의 실험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데, 편향이 낮은 교사들의 학급에서는 골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학생에 대한 선입견이 약한 교사들은, 기대가 낮다고 지목된 학생에게도 다른 학생과 동일하게 대했고, 그 학생들은 기대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이는 편향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악순환은 멈출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에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지 않을까? "나는 미루는 사람이야"라는 믿음이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골렘의 주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무언가가 달라질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나는 미루는 사람이야"라는 정체성 수준의 믿음이 왜 특별히 강력하고, 어떻게 하면 이 반복되는 고리를 풀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참고문헌

Babad, E. Y., Inbar, J., & Rosenthal, R. (1982). Pygmalion, Galatea, and the Golem: Investigations of biased and unbiased teachers. Journal of Educational Psychology, 74(4), 459–474.

Lord, C. G., Ross, L., & Lepper, M. R. (1979). Biased assimilation and attitude polarization: The effects of prior theories on subsequently considered eviden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7(11), 2098–2109.

Rosenthal, R., & Jacobson, L. (1968). Pygmalion in the classroom: Teacher expectation and pupils' intellectual development. New York: Holt, Rinehart and Win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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