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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십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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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Aug 13. 2023

왜 완치되어야 해?

  “일 년 안에 합격해야 된다.”


  병원에 가기 전에 식사를 하는데 아빠가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내게 그런 기대를 하고 있다는 건 나도 눈치상 알고 있었다. 내가 여전히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라는 건 스스로도 핑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오래 고생하지 않고 합격한다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가면 의사랑 무슨 이야기는 해?“

  “가서 약만 받아오는 거 아냐?”

  “약 바꿔야 되는 거 아냐?”


  약을 끊는 날이 올 거라는 기대를 접었다. 그런 사실을 가족들에게 공유하지 않은 게 불찰이었을까. 요즘 나는 긴장성 두통이나 근육통, 기분장애를 인지하면 증상이 없어질 때까지 약을 먹는다. 예전에는 가급적 약을 적게 먹으려고 용량이 적은 약을 복용하며 증상을 살폈다. 이제는 그냥 처음부터 용량이 많은 약을 먹는다. 증상이 완화되길 기다리면서 시름시름 앓는 시간이 길어지는 게 싫다.




  “네가 노력해야 돼.”


  트리거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 앉아서 나는 아빠에게 말을 할지 말지 고민했다. 고민 끝에 말을 꺼냈다.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하지 않았냐. 치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계속 할 거면 집을 나가겠다. 이러면 내가 집에 있을 이유가 없다. 그러고는 다른 말 없이 차에서 내렸다.


  병원으로 가는 짧은 거리가 흔들렸다. 어쩐지 영원히 병원에 도착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득히 멀어보이던 병원에 도착해 상담실에 앉았다. 의사는 아빠와 같이 왔는지 물었다. 아빠에게 이야기를 한 건 잘 한 일이라고 말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되면 아빠를 병원에 모시고 오라고 했다.


  “죽어야 끝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첫 상담 후 상담실에서 눈물을 보인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상담 후에도 감정은 진정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 탄 버스는 평소와 다른 코스로 달리고 있었다. 아무려면 어때. 그런 생각이 들 때쯤 버스는 집 앞에 나를 내려줬다. 집에 두고 왔던 휴대폰에는 엄마와 아빠로부터 전화와 문자가 와있었다. 그대로 내버려둔 채 선풍기 바람을 쐬며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었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기 위해 자전거를 끌고 거리로 나섰다. 날이 더워지면서 평소 걸어다니던 길도 자전거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안전하게 다니려고 선택한 길이지만 한두 대씩은 불쑥 나타나곤 했다.


  멍 때리며 자전거를 타다가 사거리에서 좌우를 살피는 걸 잊고 지나쳤다. 마침 오가는 차는 없었다. ‘이러다 사고 나겠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애초에 사고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말도 하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파묻혀 지내는 날이 하루, 이틀 쌓여 갔다. 그 사이 아빠는 몇 번이나 사과했고, 엄마는 눈치를 보다가 혼자 화를 냈다. 다시 인간다워진 건 동생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할지도 몰라요.”


  이 말을 언제쯤 부모님에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한번만 더 그러면 의사가 아빠를 모셔오라고 했다는 말도 못했다. 마음 속에서는 평소처럼 아주 캐주얼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 날 이후로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 아무 말도 못했다. 내가 한 말이라고는 싫어, 하지마, 안 먹어, 내버려둬 그리고 침묵.


  덤덤하게 내 상태와 생각을 전달할 수 있을 때가 오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지금 내게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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