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해야겠다고 생각한 이후로 경력과 무관하지만 동종업계 두 곳에 지원서를 냈다. 내심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역시나 서류에서 광탈했다. 다른 한 곳은 코로나 확진자 발생 때문에 화상면접을 봤는데 살면서 처음으로 면접을 망쳤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탈락했다. 사회생활 초년생의 마음은 잊혀졌고 경력자의 시건방짐과 무성의함만 남아 있었다. 이전 회사에서 "짜란다 짜란다 짜란~ 다!"를 너무 많이 들었더니 나도 모르게 기고만장한 경력직이 돼버렸다.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지방에 내려와 정착하는 것의 어려움도 새삼 느꼈다. 면접에서 서울에서 언제 내려 왔는지, 다시 올라갈 계획은 없는지, 이곳에서 정착할 계획인지, 연봉은 신입 기준으로 받아도 괜찮은지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곳에서 살려고 내려왔고 연봉은 적게 받아도 괜찮다고 했지만 딱히 믿는 것 같지 않았다. 내 경력과 학력은 해당 직무와 무관한 동시에 과도했다. 나는 건방지고 부담스럽고 불필요한 인력이었다.
"차라리 이전 회사에 가서 재입사하겠다고 하는 게 빠르겠어."
그런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잠깐 해봤지만 딱히 가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굳이 그렇게 살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단계까지 왔지만, 어째서인지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가슴에서부터 숨이 턱 막혔다. 평범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싶지만 회사에서는 이미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으며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없는 듯이 다닐 수 있는 직원이 될 수 없었던 것. 그것이 내가 다녔던 두 회사를 나온 결정적 계기였다.
다만 한 가지 미련이라면 여전히 나에게 고마운 마음을 나눠주고 있는 살가운 동료들이 그립다. 우리는 왜 더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나. 고마운 마음을 안으로 고이 접어놓고 직접 전해주지도 못했다. 그저 매일 매일 아둥바둥 일에 치여 살다가 가끔 서로를 위로할 뿐이었다. 치료를 일찍 받았다면, 병원을 바로 바꿨더라면 나는 여전히 그들 곁에 있었을까?
하지만 지금 같은 내려놓음은 회사 안에 남아서는 결코 얻지 못했을 것이다. 운이 좋아 오자마자 좋은 의사를 만났고 덕분에 나를 더 많이 들여다보고 깨달을 수 있었다. 치료 때문에라도 지금은 올라갈 수 없다. 내려온 이상 이제 내게 서울로 가는 선택지는 없다. 나는 어떻게든 여기 남을 것이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대면해야 하는데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편인가요?"
도서관 단기 계약직 면접에서 이 질문을 듣고 이 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달간 도서관에서 일했던 때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나는 친절한 사람이었나? 어쩌면 이후의 도서관 면접에서 내가 계속 탈락했던 것은 내 생각처럼 경력 부재가 아니라 한달 내내 없는 듯이 일만 하고 싶은 마음을 온 몸으로 드러냈던 내 모습 때문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번에 합격한다면 일할 때 많이 웃어야겠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더 많이 대화하고 어울려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몇 군데 더 원서를 쓰려다 멈췄다. 이번에는 제법 이전 직무와 연관 있는 자리였는데도 손이 가지 않았다. 뭔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에 들떠서 처음에는 아무 일이나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이왕이면 도서관에서 책 냄새를 맡으며 일하고 싶다. 그리고 돈을 조금 더 벌기보다는 적게 벌어도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내가 이 작은 도서관에 유난히 집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