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의 카테고리는 독서인가 음식인가
김훈의 역사소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으로 피난 간 임금 인조와 백성들에게 일어난 일을 특유의 간결한 필체로 묘사한다.
맞서 싸우자는 편과 화친을 도모하자는 두 편으로 갈라져 입씨름을 벌이는 신하들,
그 와중에 존재감 없는 임금,
청군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고생하는 건 백성들.
결국 인조는 청에게 항복을 하고 그 증좌로 삼전도비가 세워진다.
(잠실 석촌호수 근처에 있다)
(사진 출처: 두산백과)
사실 이걸 쓰고자 하는 게 아니고,
먹고 사는 건 만고불변의 원칙이기에, 조선시대이건, 전쟁 중이건, 임금이건, 백성이건 매 끼니를 먹어야 산다는 것을 방증하듯, 작가는 임금과 백성의 먹거리의 묘사에 상당수의 글자를 할애한다.
소설의 표현을 따르자면 '어제의 끼니가 오늘의 끼니를 책임지지 못했기에 임금도 군병들도 먹고, 또 먹었다.' 피난 중에도 임금은 잘 먹었다. 백성들은 잘 먹지 못했다. 그 대비가 극명하다.
임금은 단백질과 채소를 골고루 잘 먹고 있었다. 현대의 건강식단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다. 그래서 이 책은,
1. 소설가 김훈의 팬
2. 역사소설 마니아
3. 건강식단에 관심 있는 자
에게 두루 추천할 수 있겠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서 발췌)
"흰쌀밥에 꿩 백숙이 차려져 있었다.... 마른 산나물 무침과 무말랭이도 딸려 있었다."(90쪽)
"아침 수라상에 졸인 닭다리 한 개와 말린 취나물 국이 올랐다."(104쪽)
"상궁은 말린 산나물과 밴댕이젓으로 저녁 수라상을 차렸다. 산나물을 데쳐서 통깨를 부리고, 실고추와 미나리로 밴댕이젓 위에 고명을 올렸다."(191쪽)
"수라간 상궁이 떡국을 끓였다. 맑은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쌀독에 박아 두었던 달걀 한 개를 풀었다."(257쪽)
"쌀뜨물에 토장을 풀어 냉이 뿌리를 끓인 다음 고춧가루를 한 숟갈 뿌렸는데, 도살장 계집종의 솜씨와 수라간 상궁의 솜씨가 다르지 않았다."(266쪽)
군병들은 잘 먹지 못했다. 곡식으로는 보리와 조 따위를, 단백질 공급을 위해 성 안에 있는 말과 개를 잡았다.
"... 보리밥 한 그릇에 뜨거운 간장 국물 한 대접을 마시고.."(58쪽)
"..... 기름 뜬 국물을 한 사발씩 마셨다. 말을 삶은 누린내가 성 안에 퍼졌다."(82쪽)
"... 말먹이 풀로 불을 때어 말을 삶고 보리죽을 끓여서 허기를 면한..."(82쪽)
"군병들은 도끼로 말의 사지를 끊어냈다. 대가리를 뽀개고 내장을 발라서 가마솥에 삶았다.... 뜨거운 국물에 조밥을 말아먹고 말뼈를 뜯었다."(92쪽)
"찐 메주콩을 한 줌씩 야식으로 나누어주었다. 오동나무 잎으로 싼 메주콩은 얼어 있었다."(96쪽)
"군병들은 총안 아래 앉아서 찐 콩으로 점심을 먹었다."(288쪽)
항복이 가까워지자, 그제서야 남은 식량을 털어 군병들을 먹였다.
"그날, 임금은 군사를 호궤했다. ...돼지를 잡아 국을 끓이고 쌀밥에 삶은 콩을 버무려 군병들을 먹였다. 민촌 백성들이 조 껍데기로 담근 술이 익어서 한 사발씩 돌렸다."(200쪽)
"삼전도에서 되돌아온 쇠고기와 술을 풀어서... 군병들을 먹였다."(250쪽)
"조정이 성을 나가자 군병들은 성첩에서 내려왔다.... 남은 곡식을 털어서 군병들을 먹였다. 성 안으로 들어온 군병들은 처음으로 포식했다."(3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