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려라

by 수메르인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


에어컨을 틀어야 되나 하고 고민하던 어느 날 저녁, 둘째 아이가 종이 한 장을 끼적끼적하더니 나한테 들이밀었습니다.


"이게 뭐야?"

"이번 크리스마스 때 갖고 싶은 선물 목록을 써봤어요."

"(안 되겠다. 틀자! 전기세가 문젠가. 사람은 살고 봐야지.) 지금 7월인데?"

"(못 들은 척) 실바니안 이층 집하고, 집에 들어갈 가구 세트를 원해요. 과학이 좋아 책 시리즈도 좋아요."

"(반격이닷!) 엄마도 크리스마스에 갖고 싶은 거 있는데?"

"저는 그런 것을 살 돈이 없잖아요 (대신 돈이 있는 엄마는 내 선물을 사 주어라)."

"......"


가만 보면 둘째는 늘 그런 식입니다.


어디 슈퍼라도 갈 때면 꼭 따라나서서 과자 하나를 떡고물로 얻었고, 학교에서 뭔가를 배워오면 꼭 집에서 개인기를 보여줍니다.(앞구르기, 줄넘기 쌩쌩이 하기, 리코더 불기 등등)


그러고 보니 지난 어린이날도 둘째가 목록으로 적어준 선물들을 다 사주었네요. 어린이날에 자녀에게 선물해주는 것은 뭐 으레 하는 거라지만, 신경 못 쓰고 있다가 막상 어린이날이 닥치니 목록대로 주문만 하면 되어 오히려 수월했습니다. 반면 첫째는 별 말이 없길래, 선물 뭐 해주지 하며 고민하다가 정작 뭘 줬더라....


그러니까, 총량을 보면 둘째가 얻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둘째가 열심히 자기 홍보(?)를 한 결실인 셈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됩니다


회사에 처음 들어와서, 나만 열심히 하면 다 알아줄 줄 알았습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란 말처럼, 지금은 몰라도 언젠가는 알아주겠거니 했습니다.


그게 아님을 나중에서야 깨달았어요. 아이들을 키워보고서야 확실히 알았구요.


부모 자식 간과 마찬가지로, 상사와 부하는 기본적으로 일대다(1:n)의 관계입니다. 상사는 부하직원이 신경 쓰는 것의 1/n 만큼만 주의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드물게 일대일의 관계라고 해도, 상사가 신경 써야 할 것의 범위가 훨씬 넓죠. 관리를 하는 입장에서는 아무 피드백이 없으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드러난 문제를 처리하는데 우선 신경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팀원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이순신처럼 일하지 맙시다"

"네? (뜬금없이 뭔 소리?)"

"나의 죽음을 적에게 꼭 알리라고. 본인이 일을 열심히 해도 나한테 어필을 안 하면 내가 잘 몰라요. 부장님이나 이사님한테도 마찬가지예요. 부하직원이 많으니 일일이 신경 쓰기 힘들 수밖에요”


상사는 안타깝게도 전지전능하지 않습니다. 상사에게 보고하는 것은 보통 결과물에 불과합니다. 그걸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과 과정이 있습니다만, 상사가 일일이 그 과정을 알기는 힘들어요. 정당한 평가를 위해서는 평가를 하는 사람이 내가 한 일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알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cover photo : 영화 '한산:용의 출현' 스틸. 사진 제공=롯데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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