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반찬 좀 보내줄까? 토마토가 제철이라 이번 주에 보내야 되는데."
"아, 저희 집 냉장고가 꽉 차서 지금은 좀 곤란해요. 지난번에 보내주신 채소도 아직 다 못 먹었어요..ㅜㅜ "
"(아니 나의 호의를...) 그래 알겠어.......(긴 여운을 남기며 전화를 끊는다)"
분명 시어머니는 맞벌이하느라 바쁜 저희 부부를 위해 신경 쓰셨을 테지요. 드문 확률로, "아들 부부를 챙기는 헌신적인 나의 모습 멋지지 아니한가, 오홍홍"일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종종 이렇게 연락 주시는데, 좀 부담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정말로 지난번에 보내주신 채소를 아직 다 못 먹었거든요.
주는 쪽은 호의겠지만 받는 쪽에서는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받는 쪽이 원하는 종류나 시기의 호의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거절할 때도 최대한 완곡하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딸 같은 며느리 없다고 하죠. 우리 엄마였으면 그만 좀 보내라고 편하게 이야기했겠죠.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보내달라고 할 겁니다..)
저는 종종 시어머니를 직장 상사에 비유합니다. 피로 섞이지 않고, 성인이 되어 만나는, 한쪽이 우위를 가지고 지속되는 관계라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시댁에 갈 때마다 일종의 회사 워크숍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어머니가 아니라 이사님이라고 생각하면 일희일비하지 않고 차분해집니다.
조직관리자로 승진을 하면서 가장 피부에 와닿은 변화는 부하직원들이 대체로 호의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의 말을 경청합니다. 한마디 할 때마다 빵빵 터집니다. 나를 초롱초롱한 눈길로 바라봅니다. 내가 갑자기 매력 있는 사람이 돼버린 걸까요? 아니죠. 갑자기 그들을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겁니다. 저 또한 제 상사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어찌 보면 조직생활에서 필수적인 자세입니다.
제가 봤던 최고수는 모 거래처의 직원이었는데요, 업무적으로도 빈틈없이 챙겨준 데다가, '나는 네가 나의 갑이라서 아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인간적인 매력에 끌려 잘 지내고 싶은 것뿐이다'라는 식으로 부담을 주지 않는 마무리까지 완벽했습니다.
그러니까 구분을 잘해야 합니다. 사실은 나의 인간적인 매력이 아니라 조직이 (잠시) 부여한 자격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조직의 직위는 잠시 빌리는 것입니다. 회사를 나가면 반납해야 합니다. 내가 천부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회사에 오래 있을수록 직위는 높아지며 그에 비례하여 사람들은 더욱 호의적으로 바뀌기 때문에, 사회적인 지위와 자연인인 나를 분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비록 나이를 먹었지만 나는 또래와 다른 것 같다! 젊은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든다면, 혹시 그 젊은 친구들이 부하 직원이나 거래처 직원들은 아닐는지요...
이럴 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제 이십 대 후반을 돌이켜서 사십 대 중반의 팀장에 대한 인상을 떠올려봅니다. 한마디로 "무관심"이었습니다. 나는 나의 세계가 있고, 그들은 그들의 세계가 있습니다. 마치 평행우주와 같이 두 세계는 만나지 않습니다. 아마 제 후배 직원들도 저를 그런 시선으로 보고 있지 않을까요. (아님 아예 안 보고 있겠지요)
어찌 보면 워킹맘은 요즘 시대에 최고의 상사가 될 수 있습니다. 회사일과 가정일을 병행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그 외의 일은 엄두를 못 냅니다. 이를테면 부하 직원들과 개인적으로 가까워지려는 오지랖이 없는 편입니다. 업무적으로 필요한 의사소통까지만 합니다. 퇴근하고 김대리와 술 한잔 이런 건 별로 생각이 없습니다. 집에 가면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거리두기는 코로나19에만 필요한 것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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