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여성상사 1호가 될 순 없어

by 수메르인

'1호가 될 순 없어'


모 케이블 티브이의 예능프로그램 제목입니다. 개그맨 부부 세 쌍에 대한 관찰 예능인데, 유독 개그맨 커플 중 '이혼 1호'가 탄생하지 않는 이유를 집중 탐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라고 홈페이지에서 소개합니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고, 몇십 년 전 삼성그룹은 광고에서 외쳤습니다. 바꿔 말하면 1등은 사람들이 계속 기억합니다. 나쁜 것으로 1등을 해도 말이죠.


업력이 반백년 가까이 되는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 아직 1호가 나오지 않은 것 중 하나는 직장 내 성희롱으로 처벌받은 '여성' 직원입니다. (물론 앞으로도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직장 내 성희롱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업주, 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인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그 밖의 요구 등에 대한 불응을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

(남녀고용평등법 제2조 제2항).



몇 년 전부터 사회적인 미투 현상과 궤를 같이하여, 저희 회사에서도 몇 명이 직장 내 성희롱으로 징계를 받은 경우가 생겼습니다.


사실 저도 입사 초기 회사에서 성희롱을 몇 번 겪었습니다. 모 부장님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제 허벅지를 만졌고, 노래방에서 부르스를 추자고 끌어당긴 상사도 있었습니다. 그게 성희롱이라는 인식도 별로 없을 때였습니다. 선배 여직원과 의논을 했지만, 힘이 없는 네가 참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말만 들었습니다. 억울했지만 스스로 요령껏 피하는 것 말고는 어떻게 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노래방에 갈 때마다 구석에서 노래만 열심히 불렀습니다. 나를 대신해 자기랑 춤추자며 논개처럼 부장님을 끌어안은 당시 모 남자 대리님에게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감사의 마음이 듭니다.




직장 내 성희롱에 남녀구분은 없습니다


어느덧 저희 회사도 여성관리자가 꽤 생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자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갈등 양상도 꽤 눈에 띕니다. 어찌 보면 통계적으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가 하면 여자 상사가 성희롱에 가까운 언사를 했다는 소문도 돌기 시작합니다. 모 여자 상사가 남자 부하직원에게 업무 지시를 가장해 추파를 던졌다거나, 또 다른 여자 상사가 여자 부하직원에게 성적으로 모멸감이 드는 언사를 했다던가요.


그렇지만 남자 상사의 경우처럼 공론화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피해 직원이 일을 키우려 하지 않습니다. 주위에서도 "남자가 쪼잔하게 뭐 그런 일로 신고를 하냐"란 반응입니다. 아직 우리 사회는 남자가 성희롱의 피해자가 된다는, 여자가 가해자가 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은 주로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히 여성 상사가 점점 증가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남녀를 구분할 이유가 없습니다. 남자 상사가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듯이 여자 상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상사가 되어보니 부하 직원에게 편하게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이 불쾌할 수 있는 발언을 할지도 모릅니다. 출산까지 한 기혼 여성이라면, 얼마나 할 말이 많겠습니까. (차마 이 지면에 적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래서 친분이 있는 여자 팀장과 서로 약속을 했습니다. '성희롱 여성 상사 1호'가 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상대방이 선을 넘는 발언을 할 때마다 책상을 두드리며 신호를 해주자고요. 수위가 올라갈수록 책상을 치는 속도와 강도가 빨라집니다.


조직관리자는 큰 권한과 영향력이 있는 만큼 자기 검열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호가 될 순 없지만 2,3호 등등 역시 되지 않도록 오늘도 열심히 마음의 책상을 두드려 신호를 보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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