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수메르 퀴즈쇼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경기 규칙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문제를 맞히면 100점 획득이고요, 틀리면 100점 감점입니다.
부저를 누르신 분만 답변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럼 이제 시작합니다!"
(잠시 후)
"자, 치열한 접전이었습니다. 이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1번 참가자는 3문제 맞히고 4문제 틀렸네요. -100점입니다.
2번 참가자는 1문제 맞혔지만 3문제 틀려서 -200점입니다.
3번 참가자는 한 문제도 못 맞혔지만 감점도 없어서 0점이네요.
우승자는........ 3번 참가자입니다!!"
하반기가 시작하는 인사 시즌이다. 역시 초미의 관심사는 누가 승진하냐는 것.
"K팀장은 이번에도 부장 안 됐다면서?"
"일 잘하는데 왜 그럴까?"
"성격이 좀 세? 적이 많아...."
임원들은 서로 자기 라인을 승진시키려고 애쓴다. 인사위원회는 누구누구는 이래서 승진시키면 안 된다는 성토의 장이 되기 마련이다. 능력이 있어도 흠결이 없는 게 우선이다.
살벌한 경쟁 속에서 올라선 사람들, 역사는 살아남는 자의 기록이라고 했던가. 그중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설의 L부장이 있었다.
언제나 부처의 얼굴을 하고선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바위처럼 살아갔다. 그래서 특히 윗사람들이 신뢰했다. 무슨 말이라도 터놓을 수 있는 믿음을 줬다.
그의 비결이랄까.. 순리를 따르는 것이다.
A안과 B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 치자. L부장은 인위적인 것을 싫어했다. 진득이 버티면 둘 중 어느 하나는 유효기간이 지나 채택할 수 없는 시점이 온다. 살아남은 나머지 안이 자동적으로 선택된다. 아무런 의사결정도 하지 않았지만 결과물을 얻었다. 물론 방법을 안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행여나 일이 지연될까 전전긍긍하지 않는 굳은 심지를 지녀야 한다. 이쯤 되면 존경의 경지다.
조직관리자는 최상의 결과를 내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그 일을 제일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시킬 수밖에 없다. 물이 낮은 곳으로 고이듯 우수한 사람에게 일은 몰린다. 회사는 개개인에게 골고루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훈련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성과자를 대놓고 배제하기 힘든 조직에서 프리라이더는 필연적으로 생긴다.
상사는 부하 개개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일을 하는지 알기 힘들다. 결과로 판단하므로 특히 라인제에서 개개인의 기여도는 구분하기 어렵다. 그 틈을 타 정작 일은 등한시하고 윗사람과의 돈독한 관계를 통해 좋은 평판을 쌓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아랫사람이나 동료에게 미루면 어떻게든 결과가 나온다. 자신의 지위를 활용해 적당히 포장해서 보고한다. 제대로 하지 못해 나를 깎아내리려는 경쟁자들에게 빌미를 제공하느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부류들이다. 감점만 피하면 우승할 수 있는 퀴즈쇼가 된 건 어째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