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가을
퇴근 무렵에 예술의 전당에 가는 길은 수월치 않다. X카오 길안내는 올림픽대로를 타다가 반포대교 남단에서 우회전해서 반포대로를 따라 쭉 가면 이십 분이면 도착할 거라고 알려줬다. 길안내 프로그램(과 내가) 간과한 것은, 올림픽대로의 주행은 비교적 양호했으나 반포 쪽으로 빠지는 맨 오른쪽 차선이 수백 미터 막혀있다는 점이었다. 노들길을 타고 오다가 이수교차로에서 사당대로를 타고 갔었어야 했다.
겨우 공연시작 십 분을 남기고 예술의 전당 삼거리 앞 횡단보도에서 택시에서 내렸다. 콘서트홀은 예술의 전당 앞쪽에 있으니 서두르지 않고 정상걸음으로 걸었다.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안내판을 따라갔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건강진단을 하지 않으면 공연장에 입장할 수 없다는 사뭇 살벌한 경고문이 벽을 따라 반복되어 붙어있었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간당간당했기 때문에,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은 난감하겠다고 공감이 됐다. 다행히 내 폰의 배터리는 나를 공연장에 들여보낼 여력이 남아있었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은 이천석 가량 되는 중규모의 공연장이다. 웬만한 공연장이 그렇듯, 네모 모양으로 관객석을 꽉 채운 1층과, U자 모양으로 관객석이 배치된 2층과 3층이 있다. 과거에는 공연만 보면 되지 싶어 가성비 있는 2,3층을 선택하기도 했지만, 3층에서 조물주의 시선으로 공연을 보노라니 개미를 보는 신의 마음처럼 출연진이 하찮게 느껴져서 (한강진역 인터파크홀이 유난히 가파르다), 웃돈을 주더라도 겸허하게 1층으로 가자고 마음먹었다. 예매가 늦어 S석임에도 자리는 1층의 오른쪽으로 약간 치우친 비교적 뒤쪽이었다. 무대 뒤쪽에 삼 면경의 각도와 면 수만큼 위치한 합창석에도 관객들이 거리를 띄워 앉았다. (물론 나머지 자리도 코로나 방역수칙에 따라 두 자리씩 비워져 있었다)
피아노 리사이틀의 경우 선호도에 따라 자리의 호불호가 갈린다. 피아노는 관객석에 오른쪽 옆구리를 보이고 있으며, 따라서 연주자는 관객이 보기에 왼쪽에 앉는다. 물론 앞줄 한가운데에 앉으면 연주자의 모든 것이 잘 보이겠지만, 보통은 연주자의 손을 보느냐, 얼굴표정을 보느냐로 선호도가 나뉜다. 내가 예매했을 때 비교적 오른쪽 자리가 많았던 것으로 보아 통상 연주자의 등을 볼지언정 현란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을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이 많은 것 같다.
공연장의 불이 꺼지자, 무대 왼쪽의 벽이 열리고 손열음 양이 등장했다. 허리를 묶는 천이 세트로 되어있는 검은색 민소매의 점프슈트(상의와 바지가 한벌로 붙은 여성용 의복)를 입고, 밑창이 빨간색인 크리스천 루부통의 스틸레토힐을 신었다. 특히 힐은 족히 십 센티는 되어 보이고 귀를 후빌 수 있을 만큼 가늘어서, 피아노 페달 밟다가 벗겨질 것 같았다. 베테랑 연주자인데 어련히 알아서 할까 하고 걱정을 거뒀다.
연주곡에 대해 예습을 하지 않아서 얼마 전에 죽은 현대 작곡가의 곡을 연주할 거라는 정도만 알았다. 손열음 양의 첫 곡은 특급호텔의 라운지에서 연주하는 피아노곡의 느낌이다. 해석이 어렵지 않은 재즈풍의 곡이다. 피아노 터치는 투명했다. 수채화에 색을 엷게 덧칠하듯 화음이 더해졌다. 물론 이런 연주를 호텔 라운지의 배경음악으로 듣는다면 사시미로 매운탕을 끓이는 것만큼 과분하다. 이어 현대적인 분위기의 5분 내외의 길지 않고 정박이 아닌 몇 곡이 이어졌다. 연주 중간에 연주자가 박수를 치는 실험적인 곡도 있었다. 그 연주가 끝나고 관객석에서 일어난 누군가에게 손열음 양이 박수를 보냈다. 아마도 그 곡의 작곡 가였던 것 같다.
15분의 인터미션이 끝나자 손열음 양이 의상을 바꿔서 등장했다. 이번에는 등이 동그랗게 파인 흰색의 점프슈트였다. 허리를 묶는 끈은 없었다. 연주하는 곡은 족히 20분이 넘었다. 앞서 연주했던 곡들에 비해 비교적 곡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연주가 모두 끝나고 박수가 이어졌다.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클래식공연의 룰은 다음과 같다.
매 곡이 완전히 끝나고 연주자가 악기에서 손을 떼야 박수를 친다. 공연이 끝나면 계속 박수를 친다. 연주자가 퇴장해도 계속 친다. 그러면 연주자가 다시 나와서 인사를 한다. 그래도 계속 친다. 연주자가 퇴장했다가 멈추지 않는 박수소리에 다시 나온다. 이걸 세 번 반복한다. 삼고초려의 정신을 박수로 구현한다. 이게 끝나야 연주자가 앙코르곡을 연주한다.
아마 최초에는 연주자가 한번 퇴장하면 끝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너무 훌륭한 연주를 듣고 관객들이 박수를 멈출 수 없었고, 인사를 끝낸 연주자도 할 수 없이 다시 등장해서 재인사를 했을 것이다. 이게 관행으로 굳어져 "삼등장"은 관객이든 연주자든 서로가 잘 아는 의식이 되었다.
앙코르곡은 당연히 공연 프로그램북에는 나와있지 않으므로, 어떤 곡을 연주할지가 서프라이즈로 남는다. 손열음 양은 이날 앙코르곡을 네 곡인가 다섯 곡인가 연주했다. 앙코르곡의 개수는 정해진바 없으나 기분이 좋을수록 늘어나는 것이 합리적인 추정이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 감상문을 쓸 생각에 완전한 몰입을 못했다. '이런 느낌이 들면 이렇게 활자로 표현해야지'라는 의식이 남아있었다. 공연을 볼 때는 무의식상태에서 음악과 나의 일체감을 느끼는 즐거움이 가장 크다. 네 번째 앙코르곡에 이르러서야 글을 쓸 생각을 포기하고 음악 자체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피아노 선율이 혈관을 타고 몸속을 흘렀다. 선율이 조정하는 마리오네트인 나는 살랑거렸다.
앙코르가 끝나면 역시 앞서 언급한 '삼등장'이 반복된다. 그동안 연주자가 등장하는 문은 열려있다. 연주가가 완전히 퇴장하여 문이 닫히고 관객석에도 불이 꺼지면, 그 신호에 맞춰 '훌륭한 연주에 박수를 멈출 수 없는 관객'역의 관객들도 연기를 멈추고 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