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끼리 보는 거보단 젊은 여성과 함께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작년부터 뉴스에 떠들썩하다. BTS가 속한 하이브와 뉴진스가 있는 자회사 어도어의 대표인 민희진 씨의 경영권 찬탈(?) 논란이 진행 중이다. 그 와중에 민희진 씨의 직장 내 성희롱 은폐 의혹도 제기된 모양이다. 어도어 부대표가 비즈니스를 위한 술자리에 여성 직원 모 씨에게 함께 나가자고 종용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아무래도 남자 둘이 보는 것보다는 어린 여자가 함께하는 게 좋죠" 등의 성희롱적 발언이 이어졌다는 게 모 씨의 주장이다.
실체적 진실은 제삼자인 내가 알 수 없다. 놀라운 건 '이제는 이 정도도 신고가 가능하구나'라는 격세지감이다. 성희롱이 아니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당사자가 성적 불쾌감을 느꼈다고 신고할 수 있다는 관념 자체가 과거엔 없었다.
직장 내 성희롱이 화두에 오르고 실제 처벌 사례도 증가하면서 남직원들은 조심한다. 정확히는 젊은 여성직원들에게 조심한다.
나이 든 여직원은 괜찮다고들 생각한다. 성적 농담을 해도 그들은 괜찮다고 말한다. 계속 그런 말을 들어왔기 때문에 맷집이 있을 거라고 여긴다. 볼 거 할거 다 지난 나이에 무슨 성적 수치심이 있겠냐 생각한다.
일부는 우리들의 책임일지도 모른다. 계속 괜찮다고만 말해 왔으니까. 변명을 하자면, 그 당시에 괜찮다는 말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었나. 성희롱이라는 인식도 없었다. 문제 제기를 해봤자 매장되는 건 권력이 없는 나였다.
한줄기의 권력이라도 지닌 지금은 어떤가.
몇 년 전 일이다. 계약 성사를 기념하여 거래처와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 신세를 진 우리 쪽에서 한 턱 내는 자리였다. 거래처 사장은 육십 대 중반으로 후덕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자식들은 다 장성해서 부인과 둘이 살고 있다고 했다.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사태는 우리 쪽의 급발진에서 시작됐다. 비싼 술을 몇 병 마시고 나니 나사가 풀어진 것임에 틀림없었다.
"사장님은 애인 없으십니까? 저는 돈이 없어서 엄두가 안 납니다만."
"신기하게 나한테 접근하는 사람이 없었지 뭔가. 지금 와선 후회돼. 어릴 적에 여자 많이 따먹어 봤어야 했는데."
이건 선을 넘었나. 당황한 상사가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성급히 바가지 긁는 부인으로 화제를 옮겼다. 사내 하는 일에 참견을 한다는 둥. 술 많이 먹는다고 뭐라고 한다는 둥. 내가 벌어오는 돈 써재끼는 주제에 주제 파악을 못한다고.
자리가 끝나자 상사가 다짐을 받았다.
"이 정도 이야기는 괜찮지? 어린애도 아니고. 저번에 누구누구 여성 부장도 이런 자리 괜찮다고 하던데."
"...... 괜찮습니다."
괜찮다는 말 외에 뭘 말할 수 있었겠는가. 괜찮지 않았다.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괜찮아지지 않는다. 괜찮은 척할 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성의 세계에서 배척된다. 남성들의 세계는 그냥 사회 그 자체다. 지배층은 남성의 방식으로 굴러가고 있다. 어느 정도 위에 올라와보면 더욱 확실하다.
남성들의 사적인 자리에서 대체로 여성은 동료가 아니라 욕정과 지배의 대상이다. 그 술자리에서 나는 여성이라는 완전한 객체의 일부였다. 남성들은 자신들이 여자에 대해 욕망하는 것, 불만인 것들을 쏟아냈다. 사회에 나오면 여자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작가 김훈은 한 인터뷰에서 "여자를 생명체로 묘사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어떤 역할과 기능을 가진 인격체로 묘사하는 데 매우 서투르다"라고 밝혔다. 악의는 아니라고 했지만 저명한 작가로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일종의 권력이다. 사실 여자가 남자를 제대로 묘사하는 것도 어려울 수 있다. 단지 여자는 그러한 기회를 제한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을 뿐이다.
과거에 비해 상황은 바뀌고 있다. 하나하나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늘어가고 있다. 한 사람의 목소리는 약하지만 모이면 집단으로서 힘을 가진다. 나도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