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에 더욱 소중한, 시간 많이 들여 만드는 것의 가치
요새 화제인 유튜브 채널 중 '제프프'가 있다. 구독자가 35만 명이 넘고 인기동영상은 수백만의 조회수가 나온다. 비결은 '고도의 핸드메이드 동영상'. 이를테면 기존의 노래 가사에 해당하는 배우 황정민의 영화 대사 장면을 '한 글자 한 글자'씩 찾아 이어 붙여 완성하는 식이다. 얼마 큼의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지 상상도 안 간다.
[황정민 - 밤양갱]
https://www.youtube.com/watch?v=mUDFLe3Q__U
AI(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에게 '황정민이 부르는 밤양갱 만들어줘'하면 바로 결과물이 나올 테다. 유튜브에 '가수이름+ AI 커버'만 검색해도 그 가수가 부르지도 않은 수많은 AI 영상이 나온다.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최소화하여 최고의 효율을 추구하는 게 미덕인 시대다. 역설적이게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감흥이 없다. AI가 만든 가짜가 넘쳐나는 시대이기에 사람이 한 땀 한 땀 만든 결과물이 더 귀하고 눈이 가게 마련이다.
'한국 근현대 자수: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전시회는 그런 의미에서 각별하다. 요즘 시대에 취미생활 하는 소수 말고 누가 시간을 들여 일일이 수를 놓겠어라는 고정관념에다가, 자수라고는 막연히 사극에서 양반집 규수들이 둥근 자수틀에 팽팽히 고정한 옷감에 한 땀 씩 놓는 이미지 밖에 없었지만 홀린 듯 표를 예매했다.
전시회 장소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었다. 덕수궁 안에 위치한 서양식의 석조건물이다.
자수의 역사는 2천 년이 넘지만 재료가 훼손되기 쉬워 '전통자수' 유물 대부분은 19세기말~20세기 초에 제작된 것이다. 근대기 이후에는 사적인 영역을 넘어 '수예'로서 학교에서 여성들에게 교육되었다.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부터는 공예부가 신설되어 미술로서의 중요성도 부각됐다. 1945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내 자수과가 설치됐다. (1980년 섬유예술과로 통합)
일제강점기에는 자수의 맥이 거의 끊겼으나 1960년대 중반 이후 한국자수박물관 건립, 연구 서적 발간, 1984년 국가무형문화재 자수장 지정 등 손으로 만드는 공예품의 가치를 제고하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전시회 홈페이지 요약)
전시실은 시대별로 네 개로 구성됐다.
1. 백번 단련한 바늘로 수놓고: 19세기~20세기 초 제작된 자수
2. 그림 갓흔 자수: 교육과 전시를 통해 ‘미술공예’로 거듭난 자수
3. 우주를 수건(繡巾) 삼아: 광복 후 창작공예, 즉 현대공예로서의 자수
4. 전통미(傳統美)의 현대화: 조선시대 자수를 계승하고 현대화하는 자수
수백 점의 자수 전시품은 말 그대로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만들어졌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그 정교함에 감탄했다. 기계를 활용한다거나 한꺼번에 여러 땀을 뜨는 편법은 없을 터였다. 한 시간짜리 드라마도 지겨워서 두 배속으로 보는 시대, 20분짜리 유튜브가 길어서 1분짜리 쇼츠를 즐기는 시대의 관점에선 상상하기 힘든 과정이다.
재료와 시간을 낭비한다는 이유로 자수가 현대화해야 하는 극복의 대상으로 퇴조되던 시절이 있었다. 디지털이 주는 세련됨과 효율성에 아날로그가 촌스럽게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은 다시 수작업이 주는 온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 마음은 내가 글을 한 글자 한 글자 쓰는 것과 일맥상통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