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몸으로 무슨 마라톤이야? 포기해!"
"얼마나 기대했던 대회인데... 사대문 안은 꼭 달려보고 싶었단 말이야!"
남편이 끈질기게 말렸다. 마라톤 대회를 하루 앞두고 제대로 감기몸살에 걸렸다. 하지 말라면 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맘이다.
2024 서울 YMCA 마라톤대회는 금년이 첫 회다. 경복궁, 광화문, 시청, 청계천 등 사대문 안을 일주하는 매력적인 코스다. 첫 대회라 많이 알려지지 않아 수월하게 신청했다. 10km 코스의 제한시간도 1시간 반이라니 부담 없이 뛰면 될 터였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 10km 마라톤 대회에 참가만 해보는 게 소원이었다가, 이제는 이왕이면 좋은 코스를 달려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대회 전날 밤늦게까지 고민했다. 이제 와서 감기 때문에 포기하자니 억울했다. 완주는 못해도 가보기라도 하자고 마음먹었다.
출발지는 광화문 광장 옆 주한미국대사관 앞길이다. 경복궁을 한 바퀴 돌고 난 뒤 시청 쪽으로 전진한다. 삼청동에서 청와대 앞길까지는 가벼운 오르막이다. 컨디션이 안 좋으니 무리하지 않고 제한시간을 꽉 채워 달리기로 맘먹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경복궁 돌담과 삼청동 건물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간간히 애플워치를 보면서 힘을 아꼈다. 이 추세면 완주할 수도 있겠는데? 속도를 늦추다 보니 모두 나를 제쳐가고 주변엔 열명 안팎만 남았다.
세종대로 사거리에 도달하자 교통경찰이 우리 무리를 막아세웠다.
"끝났습니다! 인도 위로 올라가세요!"
"네????? 아직 교통통제 시간 남은 거 아닌가요?"
"끝났어요. 얼른 가세요!"
너무 슬슬 달렸나. 구간별 통제시간을 잘못 계산했다. 바로 앞 도로는 차량들이 운행을 재개했다. 우리는 횡단보도에 발이 묶였다. 보행신호가 빨간불이었다. 앞서 달리는 무리들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코스를 따라 결승점까지 가면 되는 거 아닌가. 마라톤 대회 참가자가 아니라 그냥 인도로 달리는 사람이 되었다. 주말을 맞아 시내에 나들이 온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달렸다. 교통 통제구간은 잡힐 듯 잡힐 듯 저 멀리 아득했다. 횡단보도라는 핸디캡이 있어 따라잡는 게 더뎠다. 힘을 조금씩 풀어 속도를 올렸다.
결국 을지로에서 교통통제된 맨 끝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무리에 포함되었다는 안도감, 따라잡았다는 성취감에 오히려 긴장이 풀려 몸살 상태의 민낯이 드러났다. 아직 3km 넘게 남았지만 체력이 바닥을 보였다. 2/3쯤 왔으면 완주하는 거 말곤 선택지가 없다.
좀만 더, 좀만 더를 속으로 외치며 기계적으로 팔다리를 움직였다. 코스는 머릿속에 있었다. 청계천을 1km가량 달리다가 반환하면 종로에서 끝이 날 터였다. 먼저 레이스를 끝내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얼마 안 남았다며 응원의 목소리를 보탰다.
모든 마라톤 대회가 그렇듯 시작했으면 끝이 난다. 이번 대회도 결국 완주했다. 주최 측이 주는 메달을 목에 걸고 이온음료를 마시며 홀로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일요일 오후의 종로는 혼란했다. 마라톤 대회를 끝내고 돌아가는 사람들과 무료 배식을 기다리는 노숙자들이 혼재했다.
다섯 번째인 이 레이스를 마지막으로 올해의 대회는 끝났다. 기온이 영하권으로 내려가면 따뜻한 실내를 박차고 달리러 나가기가 쉽지 않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만하면 됐지, 하고 마무리할 때다. 작년 이맘때의 바람은 '10km 대회 한 번만 나가보고 싶어'였다. 내년에 목표를 높일 의지가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분명한 건 금년의 레이스를 통해 도전할수록 성장한다는 걸 배웠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