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사랑하는 이들 곁에서
이제 언니는 나이가 들어 장애 후유증으로 아픈 곳이 늘어나 건강을 위해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릴 적 아팠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서인지 몸 어딘가 아파오면 유난히 걱정을 많이 하고 신경을 쓴다.
그동안 크고 작은 수술로 몇 번의 입원 치료가 있었다.
그때마다 자매들의 간호와 도움으로 잘 치료를 하고 건강을 되찾았다.
부지런한 언니는 일을 그만둔 후 잠시도 쉬지 않고 곧바로 작은 방에 재봉틀을 들여놓았다.
이제까지 봉제공장을 다니며 익힌 기술을 활용해 동대문 시장에서 원단을 사 와 우리 자매들의 옷이며, 가방이며 필요한 것들을 시시때때로 만들어 나눠준다.
자매들이 모여 언니가 만든 옷을 입어보며 패션쇼를 하고 서로 예쁜 옷을 갖겠다고 투덕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또 자매들이 모이기로 한 날은 탁월한 음식솜씨를 발휘하여 갖가지 맛있는 김치와 반찬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는 것도 언니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고향에 계신 연로하신 엄마를 언니 집으로 모셔 와 병원도 함께 다니고 삼시 세끼를 손수 정성껏 만들어 챙겨드린다.
엄마는 자식이 많아도 언니 집에 계시는 걸 제일 편안해하신다.
아무나 할 수 없는 힘든 일을 언니가 맡아서 하는 것에 가족들은 모두 미안해하고 고마워한다.
요즈음 혼자 집에서 외롭게 있을 언니가 걱정되어 자매들은 날마다 언니에게 전화를 한다.
퇴근시간이 되면 언니의 휴대전화가 끊임없이 울려댄다.
각자의 걱정거리와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회사나 가정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다 보면
언니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위로의 말로 큰 힘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언니를 통해 다른 가족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모두 알 수 있게 되고 자매들 간에 비밀도 사라졌다.
그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말이다.
몇 달 전 언니가 친구들과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온 적이 있었다.
언니가 집을 떠난 한 달 동안 빈자리는 예상보다 크게 느껴졌다.
가족들의 쉼터이자 소통 창구역할을 했던 언니의 부재로 자매들은 허전함과 답답함을 느꼈다.
우리 가족에게 언니의 존재는 장애가 있는 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었지만
스스로 보호받기를 부정하고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늘이 보낸 천사처럼 그렇게 우리 곁을 지켜주었다.
비록 지금은 천사의 날개가 힘이 약해져 멀리 높게 날아오를 수는 없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서 약한 날갯짓으로 선한 미소를 잃지 않고 지켜주고 있음을 느낀다.
언니에게는 우리는 가질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힘이 있어서 그 많은 고통과
역경을 이겨내고 장애를 견디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넷째 언니의 삶을 옆에서 지켜봐 온 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에도 굴복하지 않고
안간힘을 써가며 당당하게 세상에 걸어 나와 자기 삶을 살아온 언니가 한편으로는
애처롭지만 너무나 자랑스럽다.
언니의 이야기를 글로 여기에 옮기며 미처 기록하지 못한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더 많음을 고백한다.
넷째 언니를 생각하며 글을 쓰는 동안 내내 가슴이 먹먹해서 쓰기를 주저할 때도
있었지만 가난과 장애를 극복하고 행복을 찾은 언니의 인생이 좌절과 실의에 빠져
주저앉아 울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이 되고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앞으로 살아갈 언니의 남은 삶이 더 이상 아픔과 고통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평온하기를 기도한다.
지금까지 <넷째 언니>를 구독해 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보내주신 관심과 응원에 힘입어 다음 연재작품 "맛으로 기억하는 유년의 날들"로 찾아뵙겠습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해 주시고 앞으로도 쭉 구독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