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에 취한 봄

진달래에 취한 봄

by 송연

사방이 바다로 펼쳐진 남쪽의 섬은 햇살에 일렁이는 파도의 입김으로 가장 빨리 봄이 찾아왔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마을은 앞으로는 수평선까지 쪽빛 바다가 펼쳐져 있고 주변에는 소나무 숲이 만들어낸 초록이 짙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우리 동네 오른쪽에 있는 중메산은 높이가 낮아 마을과 가장 가까운 산이다.

3월이 되면 유독 중메산에만 분홍색 진달래꽃이 군락을 이루어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분홍색으로 곱게 물들였다.


우리는 마을에서 한눈에 보이는 중메산에 참꽃을 보고 봄이 왔음을 알았다.

진달래꽃을 고향에서는 참꽃이라고 불렀다.


섬의 겨울은 육지에 비하면 비교적 따뜻해서 눈이 자주 내리거나 빙판이 생길 만큼 춥지 않아 놀거리가 없는 아이들은 겨울 동안 집 안에 틀어박혀 하릴없이 보냈다.


봄을 알리는 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산을 뒤덮을 때면 기다렸다는 듯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허리에 보자기를 하나씩 두르고 중메산에 올랐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활짝 펴고 봄의 요정이 되어 산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다.


봄의 기운을 받은 중메산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싹을 틔우고 올라와 아기자기한 자태를 뽐내며 아이들을 반겼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맥문동과 비슷한 식물로 그 가늘고 기다란 잎을 헤치면 달려있는

파란 구슬같이 생긴 곤두말이라고 불렀던 예쁜 열매를 따서 먹기도 하고 난초류에 속하는 식물에서 수줍게 피어 올린 꼬매밥이라고 불렀던 꽃대를 꺾어서

먹기도 했다.


지천으로 피어있는 참꽃을 따서 바로 먹기도 하고 허리에 두른 보자기에 가득 따서 담았다.


봄의 숲 여기저기 피어있는 야생화와 풀들을 따서 먹고, 보고 만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지쳐 해가 저물때쯤 산에서 내려왔다.


보자기 가득 따온 참꽃의 맛은 시큼하고 약간의 단맛이 났다.

그냥 먹기에는 별 맛이 없어서 많이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따온 참꽃을 양푼에 가득 담고 사카린 몇 조각을 넣고 녹인 물을 부어 참꽃이 숨이 죽으면 숟가락으로 맛있게 떠먹었다.


그때는 설탕도 귀했던 시절이라 사카린의 달디단 맛으로도 만족하며 분홍색 참꽃으로 물든 봄을 먹었다.


어른이 되어 다시 찾은 고향은

봄을 알리던 중메산의 진달래는 이제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숲이 키워낸 봄의 요정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고 인적이 끊긴 숲은 힘이 센 나무와 식물들이 점령하여 작고 여린 진달래는 봄 햇살을 보지 못해 살아남지 못하게 되었다.


진달래를 먹고 자란 봄의 요정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