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날 하얀튀밥
어릴 적 섬에서의 여름은 유난히 길었다.
집마다 아이들이 적어도 네댓 명씩은 있었던 시절이라 길고도 더운 여름을
나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간식이 절실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엄마는 거렁지에 통보리 몇 되와 장작 몇 개비를 담아 언니들에게 튀밥을 튀겨오도록 했다. 뻥튀기를 하는 집은 옆 동네에 있었다.
우리가 튀밥을 튀러 가는 날은 약속이라도 했는지 이집 저집에서 큰 여자아이들이
거렁지에 튀밥 재료를 담아서 머리에 이고 마을 어귀에 모였다.
나도 언니를 따라 그 행렬에 동참했다.
마을회관을 지나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양쪽에 핀 예쁜 길을 지나 한참을 걸어야
옆 동네에 다 달았다.
뻥튀기집은 집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골목길을 헤집고 비탈길을 오르면 있었다.
그 집을 처음 가보는 사람도 금방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고소하고 달콤한 뻥튀기 냄새가 진동하여 코끝을 견딜 수 없게 저절로 발걸음을 그곳으로 재촉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집 마당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다른 동네 여기저기서 뻥튀기를 튀러 모여든 사람들이 그리 넓지 않은 토방과 마당에 꽉 들어차 있었다.
각자가 이고 온 거렁지를 차례대로 내려놓고 우리도 토방 한쪽에 비집고 자리를 잡았다. 맛있는 튀밥을 위한 기나긴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뻥튀기 기계를 쉴새 없이 돌리는 아저씨의 머리는 길고 떡이 져 있었다.
옷차림은 땀에 절어서 꾀죄죄해 보였고 기계에 그을려서인지 며칠 동안 씻지도 않은 사람처럼 얼굴에도 검은 얼룩이 져 있었다.
그 아저씨가 열심히 뻥튀기 기계를 돌리다 “뻥이요”를 외치면 기다리던 사람들은 모두 두 귀를 손으로 틀어막았다. 꼬소한 냄새와 함께 뻥 소리가 세상을 흔들었다.
그리고 기다란 검은색 망 안에 가득 튀겨져 나온 하얀 튀밥이 신기하기만 했다.
자루에 가득 담고 남은 튀밥을 한 줌씩 나누어 주었다. 작은 주먹으로 한 줌 움켜쥐고 바삭하고 고소하고 달달한 튀밥을 먹을 때는 기다리는 지루함도 잊어버리고
조금 더 먹고 싶은 아쉬움으로 다음 “뻥이요”를 기다리게 되었다.
여름의 긴 해가 넘어가고 저녁 어스름이 내릴 때까지 우리 차례가 되질 않았다.
나는 기다리다 몸이 들쑤셔 동네 골목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러다 같은 반
친구를 만나서 놀다 보면 깜깜한 밤이 되었다.
뻥튀기집 마당에 환하게 불을 밝히고 기계는 쉬지 않고 돌았다.
드디어 우리가 가져간 튀밥도 뻥 튀겨져 언니와 함께 큰 튀밥 자루를 이고 기다리다 지친 몸으로 어둑한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그 튀밥을 먹으며 더 달달하고 행복한 여름을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