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으로 기억하는 유년의 날들] 은하수 국수

은하수 국수

by 송연

어느 날 남편은 충청도의 어느 지역에 회사 일로 출장을 다녀왔다.

그곳에 오래된 국수 공장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든 맛있는 국수라며 국수 한 묶음이 든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그 국수를 반갑게 받아 든 나는 잠깐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혼자만의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육수를 내고 국수를 삶아 찬물에 헹구어 소쿠리에 담아 물기를 빼고

계란 지단을 부쳐 고명을 만든다.

숙성된 김장 김치와 대파를 송송 썰어 넣고 김가루를 뿌려 넣으면 맛있는 한 그릇의 국수가 완성이다.


가족들에게 완성된 잔치국수를 한 대접씩 내어 주고 나는 나만의 특별한 국수를 만들어 먹기로 한다.

대접에 생수와 설탕 한 스푼을 넣고 국수사리를 풀어 맛있게 먹는다.

남편과 아이들은 그렇게 달기만 한 국수를 무슨 맛으로 먹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나를 바라본다.

마치 내가 먹지 못할 음식을 먹고 있는 것처럼.


나에게 설탕 국수는 나이 50이 넘게 살아오는 동안 늘 간직해 온 고향의 어느 여름날 저녁 그 풍경으로

데려다주는 마법의 음식이다.


고향에서 여름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반찬이나 음식을 만들어 보관하기가 어려웠다.

텃밭에서 나는 가지, 오이, 고추 같은 푸성귀로 만든 반찬이 전부였다.


날씨는 덥고 마땅히 찬거리도 없는 날에 어머니는 동그랗게 종이로 싸인 국수 한 묶음을 사 와서

식구들의 저녁을 준비했다.

마당에 있는 화덕에 큰 솥을 걸고 물을 끓여 국수를 삶는 어머니 곁에서

아이들은 신이 나서 장난을 치며 들떠있었다.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국수라는 소박한 음식이 왜 좋은 일이 있는 잔칫날에 먹는 음식인지

그때는 몰랐지만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새삼 알게 되었다.


마당에 넓게 멍석을 펴고 한편에는 모깃불을 피워놓고 온 식구가 둘러앉았다.

반찬은 더위에 푹 익은 신 풋김치(열무김치) 한 가지로 저녁상을 차렸다.


모기를 쫓아가며 별다른 반찬도 없이 후루룩 후루룩 하얀 국수 가락이 쉬지않고 들어갔다.

흔한 멸치 육수나 콩물도 넣지 않은 맹물에 설탕을 뿌려서 먹는 국수를 참 맛있게도 먹었다.

동네 우물에서 길러온 물을 큰 대접에 붓고 설탕을 취향대로 듬뿍 넣어 달달하게 먹는 설탕 국수였다.


우리 자매들은 어쩌다 저녁으로 먹는 그 설탕 국수를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인양

두 그릇, 세 그릇씩 먹으며 행복해했다.


배부르게 국수를 먹고 재밌는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다 마당 멍석에 누워서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국수에 넣은 설탕을 뿌려놓은 듯 반짝반짝 빛나는 은하수가 바다를 향해 흐르고 있었다.


우리가 먹었던 국수에도 설탕이 아닌 밤하늘에 흩뿌려진 은하수가 뿌려진 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