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바다는 파랗고 하얀맛
태양이 작은 섬을 집어삼킬 듯 강렬하게 내리쬐는 여름 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마을에서 2, 3백 미터쯤 떨어진 바다로 내려가 물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점심을 먹은 후 오래된 소나무 정자가 있는 마을 어귀에 올망졸망 모인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바다로 내려갔다.
바다를 향해 가는 어린아이들의 어깨에는 저마다 검은색 동그란 망 2개가 매달려 있다.
미역이나 김양식을 할 때 바다에 띄어 부표로 쓰이는 플라스틱 검은색 동그란 망 두 개를
부모님이 노끈으로 단단히 연결하여 만들어 준 것이다.
아이들이 배나 가슴께에 차고 바닷물에 들어가면 부표의 힘으로 물에 뜰 수가 있어서
수영을 못하는 어린아이들에게는 필수품이었다.
수영장에서 흔히 아이들이 사용하는 알록달록한 고무튜브를 대신한 그 시절 섬에서만 볼 수 있었던 유일한 물놀이 용품이었다.
고향의 바닷가는 검은색 크고 작은 몽돌이 보기 좋게 넓게 깔려 있는 몽돌 해변이다.
우리는 몽돌을 갯돌이라고 불렀다.
바닷가에 도착한 아이들은 특별히 수영복이 따로 없어서 입고 간 겉옷을 벗어 물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젖거나 잃어버리지 않게 큰 갯돌을 몇 개 올려두고 팬티만 입고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헤엄을 잘 못 치는 어린아이들은 가져온 망을 타고 얕은 물가에서 놀았다.
수영을 잘하는 아이들은 바다 중간에 정박해 놓은 배까지 헤엄쳐 가서 배에 올라가 놀았다.
그런 모습은 얕은 물가에서 노는 아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수영을 하다가 지루해진 아이들은 남자, 여자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선착장에 모여
한 명씩 순서대로 다이빙을 했다.
겁이 없고 수영을 잘하는 아이들은 선착장 맨 위 높은 곳에서 뛰었고 나처럼 겁이 많고
수영이 능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선착장 중간정도 바닷물 바로 위쯤 되는 곳에 내려가 다이빙을 했다.
아니 다이빙이라고 하기도 무색한 높이였다.
매일 얕은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며 놀다 보니 수영을 못하던 어린아이들도 어느새 수영실력이 늘었다.
수평선이 보이는 먼바다를 향해 헤엄을 쳐서 조금씩 나아갈 수도 있게 되었고 선착장 높은 곳에서 다이빙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아무도 물에 뜨는 법과 헤엄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마치 섬아이들의 본능처럼 시간이 가면 아이들은 바닷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닷물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던 아이들은 체온이 내려가 몸이 떨리고 입술이 파랗게 질릴 때까지 놀다가 물에서 나왔다.
아이들은 햇빛에 달궈진 뜨거운 갯돌 위에 나란히 엎드려 몸을 말렸다.
썰물이 되어 점점 바닷물이 빠지면 고운 모래사장이 드러났다.
아이들은 수영을 하다 말고 갯벌에 사는 작은 게나 해파리를 잡아서 만지고 놀았다.
물이 빠진 후 드러난 선착장 아래에 큰 돌과 바위틈을 헤집고 고동이나 따개비 같은 해산물을 잡기도 했다.
갯벌 깊은 곳에 들어가면 밭에 심어진 작물처럼 바다풀들이 길게 자라나 물살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고향에서는 그런 해초를 진줄이라고 불렀다.
아이들은 물속에 머리를 처박고 들어가 진줄을 뿌리째 캐냈다. 캐낸 진줄을 한 아름 품에 안고 갯돌밭에 나와서 다듬었다.
진초록색 난초처럼 생긴 긴 잎들 사이에서 가늘고 긴 줄기만 뽑았다.
여자아이들의 긴 머리를 양갈래로 땋듯이 진줄을 땋아서 집에 가져갔다.
진줄은 햇볕에 말리면 더 단맛이 나서 마당 빨랫줄에 걸어놓고 말리기도 했다.
심심할 때 한 줄기씩 뽑아 질겅질겅 씹어서 단물만 빨아서 먹고 뱉었다.
한낮의 태양이 식어가고 물놀이에 지친 아이들은 주섬주섬 겉옷을 입고 집으로 향했다.
몇 시간 동안 바닷물과 뜨거운 햇빛에 절여진 아이들의 머리와 몸에는 하얗게 강꽃이 피었다.
몸에 밴 바닷물 염분이 햇빛에 말라 하얀 꽃처럼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양옆으로 논밭이 많았는데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들어진 작은 저수지도 있었다.
아이들은 그 저수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2차로 작은 저수지에 들어가 또 물놀이를 했다.
강꽃이 피어 서걱서걱한 몸을 헹구고 집에 가겠다는 어쭙잖은 이유로 좁은 저수지안에서 장난을 치며 놀았다.
그렇게 물놀이를 하고 집에 돌아와 집 근처에 있는 우물에 물을 퍼서 몸을 헹구고
나른해진 몸을 가눌 수 없어서 달콤한 낮잠에 빠지곤 했다.
여름방학 내내 바다를 놀이터 삼아 행복한 시간을 보낸 아이들은 모두 훈장처럼 피부가 까맣게 그을리고 타서 껍질이 한 겹 씩 벗겨졌다.
그렇게 아이들은 여름동안 탈피를 하고 성숙해진 것처럼 한 뼘씩 키도 자라고 마음도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