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감 서리

땡감 서리

by 송연

지난밤에는 비바람이 좀 세차게 불었었다.

아침 출근길 아파트 정원을 지나다 보니 세찬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감나무 아래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파란 땡감이 몇 개나 떨어져 있다.

바닥에 떨어진 땡감을 보니 문득 어린 시절 고향에서 언니와 함께 땡감을 주워다 소금물에 우려먹었던 추억이 떠올랐다.


내가 살던 고향 집에는 마당이 좁아서 감나무나 무화과나무를 심는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우리 동네의 조금 넓은 마당이 있는 집에는 감나무가 한 그루쯤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감나무가 있는 집이 어린 마음에 조금 부럽기도 했다.


고개 넘어 이웃 마을에 엄마가 나고 자란 외갓집이 있었다.

외갓집에는 그 동네에서 제일 큰 무화과나무와 감나무가 있어서 좋았다.


언니와 내가 땡감을 주우러 다녔던 게 6월, 7월쯤이었을까.


우리 집과 가깝게 지내며 농사일을 품앗이로 함께했던 이모라고 불렀던 친척 집이 있었다.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이라 우리 가족은 저녁밥을 먹은 후 TV가 있는 이모네 집에 모여서

TV를 보고 오곤 했다.

그 집 마당 한쪽에는 오래된 감나무와 무화과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산 아래 제일 높은 곳에 있는 꼭대기 집이었다.

동네 아래쪽에 있는 이모네 집은 여덟 살, 열 살쯤 되었던 언니와 내가 가려면 제법 돌고 돌아가야 하는

조금 먼 거리였다.

우리 자매는 밤에 비가 많이 내렸거나 바람이 세게 불었던 날이면 다음 날 아침 눈곱도 떼지 않은 얼굴로

감나무가 있는 이모네 집 앞 좁은 골목길로 향했다.


비에 젖어있는 좁은 골목은 질퍽하고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 골목길에는 우리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여기저기 초록색 땡감이 떨어져 있었다.

이모네집 담장을 넘어 뻗어 나온 감나무 가지에서 떨어진 땡감들이다.


우리는 누가 볼세라 땡감 서리라도 하는 것처럼 살금살금 재빠른 동작으로 치마폭이나

티셔츠 앞자락이 미어지게 땡감을 주워 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뛰어왔었다.

주워 온 땡감을 부엌 뒤꼍에 있는 항아리에 물을 붓고 소금을 타서 땡감을 넣어 두고

하루, 이틀 떫은맛이 없어지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서 항아리 속에 땡감을 꺼내 먹으면 떫은맛이 사라지고 소금물에 우려져 들큰하고

제법 아삭아삭한 감을 먹을 수가 있었다.

가끔은 참다못해 아직 떫은 감을 맛보다가 입고 있는 옷에 감물이 들어 얼룩이 남기도 했다.


별맛은 없었지만 초록색 땡감에 대한 추억은 나에게 세상의 그 어떤 맛있는 감도 줄 수 없는

그 시절에만 먹을 수 있었던 귀하고 특별한 과일로 남아있다.


밤새 굵은 장대비가 내리고 나면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고 나가 바닥에 떨어진 땡감을

주우러 가야 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