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는 공간
이사 가는 날
이삿날을 몰랐습니다
언젠가는 가겠거니 했건만
소문도 없이 떠나갈줄 알았다면
도깨비님께 비오지말라 부탁이라도 했을텐데요
떠나기 전
전화번호나 알려주지 그랬어요
별님께 부탁해
간간히 안부전화 전해달라
수줍게 말해보았을텐데요
이사 나간 집에는 또 누군가 들어왔을텐데
똑똑똑
문을 두드려 인사를 드리고
'누구세요' 묻는다면
'예전 집 사람 열심히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말하고 싶네요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
학부생 시절 고건축학술회 활동을 하면서 우리들은 오래된 사찰이나 서원, 궁, 고택들을 살펴보며 토론을 하곤했습니다. 걔 중 기억나는 주제 하나는 '사람이 살지 않는 건축물은 의미가 있는가'였습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 사람이 드나들고 사용하기 위해 지어졌으나 지금은 조금이라도 훼손을 줄이기 위해 '출입금지' 팻말이 여기저기 붙어있곤 하지요. 그래서 그 앞을 지나거나 빼꼼히 틈새로 안을 들여다보면 왠지모를 스산함만이 공간안에 가득히 담겨 있는것만 같습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과 살고있지 않는 공간은 들어서는 순간 차이가 느껴집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으로 나를 담게 되었을 때는 그 공간에 머물렀던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조금 허투루 정돈된 집 안의 작은 물건들 하나하나가 괜시리 당신이 이곳에 있었음을 증명하며, '나 여기 있었어'말해주는 도깨비가 뛰놀고 있는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단 며칠이라도 비워진 집은 허전함과 외로움이 대신 주인 행세를 하며 자리를 잡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향해 띠꺼운 눈길을 보내 괜시리 현관문을 쉽사리 넘지 못하고 사람을 쭈볏하게 만듭니다.
빈집, 한동안 비워진 집을 넘어서 '정들었던 나의 사람'이 더이상 없는 집은 묘한 기분을 자아냅니다. 누군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이지만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건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상실감입니다.
압니다. 나는 압니다.
그 정들었던 사람이 사랑했던 이라면,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당신의 집이기에 그럴테지요. 내가 바라보는 저 공간이 아주 오래 전 누군가들의 역사가 담긴 고택은, 설령 아직까지 누군가 살아가는 집이라도 나의 눈에는 오래된 눈요깃감일 뿐일겁니다. 그리스 아테네 신전이 무너지지 않고 지금도 예배를 드리고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사람이 있어 '어울려 보일뿐'인 것입니다. 공간의 의미를 나의 잣대로 판단할 근거는 그 공간에 내가 담겨 있느냐 말고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나의 사람. 나의 사랑. 나의 시간이 담겨 있지 않는 공간은 논문 속의 딱딱한 기록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걔 중에 나의 사랑이 없는 공간은 흔적도 없이 파괴되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할 정도로 나를 찌르는 거대한 가시로 남겨져버립니다.
이런 넋두리를 하는 것은 사실 당신이 살던 집 앞에 이름 없이 꽃 한송이를 놓아두러갔다 이제서야 당신이 어딘가로 떠나갔다는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일이지요. 부끄러운 일이라 이름없이 흔적없이 길가의 눈길 받지 못하는 들꽃처럼 머물고만 싶었는데 아직도 아파할 용기가 있다는게 부끄럽습니다. 차라리 잘 된 일이겠지요. 당신과 거닐었던 길과 추억을 곱씹으며 한동안의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정작 당신의 집은 이제 이름 모를 아무개의 집이 되고 당신은 떠남을 알게되니 부질없음을 알고 한 일이 정말 부질없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나는 이제 어느 한곳 자리잡아 매년 꽃을 피우는 봉숭아꽃이 아닌 바람에 흩날려 씨를 뿌리며 이곳 저곳에 꽃을 피우는 민들레가 되어야겠습니다. 언젠가 벼랑끝에 내가 피어나 천리길 아래 당신이 지나가는 만남이라도 기다리는 풀꽃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