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

오려낸 시간들

by 숨결
단발머리




사각사각

미용사의 가위가 소곤거리는 소리

새근새근

잠든 숨소리같은 소녀



짧게 잘라주세요

그런데 혹시 지난 시간도 잘라주실 수 있나요

시간이 안된다면

여기 가슴에 남은 미련과 그리움만 이라도 안될까요



미용사는 대답하겠지요

죄송합니다

그건 안되요



봄날의 햇살이었을테고

여름의 파도였으며

가을의 광야이자

겨울의 눈꽃이었을

기억은 추억은 미련은 그리움은

아마도

오래토록 묵혀 익어낸 마음만큼

공허히 느낄수없는 텅 빈 시간이 되겠지만

아마도

머리가 다시 자랐을 때 즈음엔

너는 또 다시 찾아 왔구나

덤덤히 맞이하는 계절처럼 다가올테지요







오려낸 시간들



'나는 왜 사는가'

말끔히 정돈된 책상에 앉아 짧은 물음을 던져두고 나는 단 하나의 답을 적지 못했습니다.

주변에서는 나에게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동경할만한 사람이라고들 하지만 정작 내 손에 남은건 아무것도 없는 지금을 원망하는 애달픈 마음입니다. 명치를 옥죄는 가장 큰 설움은 나에게 남은 그 어떤 기대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자연인이다'는 TV프로그램을 자주 보고는 합니다. TV를 거의 보지 않는 저에게있어 조용한 대화와 가끔씩 들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간결한 웃음소리가 왠지 가족과 함께 있는 따스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주거든요.

매회 프로그램에 나오는 산 속의 자연인들은 많은 것들을 버리고 작고 소소한 것들에서 충만한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아마도 버릴 수 있었음이 그들의 만족에서 우선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런 모습에서 나는 그들을 동경합니다. 나는 버리고 비우는데 익숙한 사람이지만 아프고 힘든 시간은 아무리 버리려고해도 버려지지가 않음이 너무나 괴로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따금 떠나는 여행들에서 나는 이런 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 정리해보곤 합니다. 어차피 버리지 못할 것들이라면 그래도 정갈하게 정돈시켜두고 싶은 슬픈 차선책이지만 그래도 갈무리 된 기억들을 안고 다시 돌아왔을 때에 앞으로 일어날 또다른 아프고 쓰라린 시간들을 어디에 둘지 몰라 전전긍긍하지는 않아도 되겠구나 생각하며 작은 위안을 삼습니다.


궁금한게 있습니다.

내가 가진 기억들은 이렇게 쌓아두고 정리해두며 그 무게를 등에 이고 살아간다면, 내가 상처준 이는 그 기억들을 어떻게 하고있을까요.

어떤 기억으로든 나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못된 마음일지라도 그 마음 때문에 내가 사랑하고 아꼈던 그대가 아프지는 말기를 바라는 모순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분열 된 내 마음은 아프고 아파서 아프지 않기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마주하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속에 쌓인 아픔들은 아프지 않은 적 없이 그저 아픔을 견디며 살아가는데 당신은 아파하지 않는다면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합니다. 이렇듯 아프게 나를 때리는 기억은 나를 수십 수백개의 영혼으로 분리시켜 나를 나와 싸우게 만듭니다. 그래서 나는 많이 힘이듭니다. 그래서 더욱 당신이 그립나봅니다. 수만번이 가위질로 오려내도 바다를 가위질 하듯 변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날들의 기억과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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