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몽(白日夢, day-dreaming)
비록 상상일지라도
백일몽
작은 화분을 좋아했던 소녀
보드랍고 귀여운 인형을 좋아했던 소녀
깊고 높은 하늘을 좋아하고
잔잔한 파도를 품은 바다를 사랑했던 소녀
타박타박
걸어서 집으로 가는 길을 좋아했던가
홀짝이는 달달한 라떼 한잔을 좋아했던가
볼이 말랑말랑한 아이들을 좋아했던 건 확실하고
포근한 엄마 품에 끼어 잠들어있곤 했더랬지
기다림보다 기다려주는 이를 사랑했고
재잘거리는 긴 수다를 즐거워했고
함께 드리는 주일 예배를 소중히했다
떠오르는 해보다 저무는 노을에 감동하고
어둠 속에 빛나는 달과 별과의 눈맞춤에 평안을 얻었지
세상 어딘가의 소녀는 어쩌면 한낱 지난밤의 꿈
눈뜨면 아련하게 또는 아릿하게 아픈 한낱 꿈
아침햇살에 스르륵 녹아내리는 그런 꿈
그러면서 문득문득 자꾸만 기억이 떠오르는 애달픈 꿈
비록 상상일지라도
어릴 적 나는 밥을 먹다가도 숟가락을 멈추고 멍하니 공상에 잠기곤 했기에 부모님은 신기해하면서도 꽤나 답답해 하셨습니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 왜 그랬는지, 어떤 공상을 했었는지는 모래 위 스쳐지나간 바람길마냥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어머니가 이따금 그렇게 공상이 많았었노라 얘기를 하면 '밥이 맛이 없어서 먹기 싫어서 그랬을거야'라고 답하곤 했는데 아주 틀린말은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나는 아직도 공상이 많습니다. 근 몇년간은 스마트폰에 중독이 되어 가만히 생각에 빠져들 시간을 의미도 목적도 없는 스마트폰 화면에 바치느라 극도로 많이 줄었다지만 그래도 나는 참 쓸데없는 생각이 많습니다. 그 이면에는 그만큼 나는 현재의 삶을 진절머리나게 싫어하고 그저 도망치고픈 마음이 가득하구나 싶습니다.
공상으로 깊이 들어가면 눈을 뜨고 있지만 꿈을 꾸듯 나의 눈을 통해 보여지는 것은 점차 사라져갑니다. 완전히 시야가 닫히고 나면 상상하고 있는 이면의 현실의 스위치가 켜지고 나는 그 안에 서있게 됩니다. 공상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길어야 채 10분을 넘지 못합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 속에서 한 편의 영화관람을 완수한 뿌듯한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공상하는 시간을 종종 영화를 보는데 비유하곤 합니다. 나의 상상이 만들어낸 한편의 짧은 단편영화로서 말입니다.
공상 속 이야기의 주제는 너무나 다양해서 일일히 풀어놓기가 무서울 정도입니다. 당장 내 눈앞의 식사가 맘에 들지 않아 멍하니 젓가락을 들고는 직접 맛있고 예쁜 요리를 멋지게 만들어내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아주 먼 앞날에 내가 죽음을 만나 눈을 감는 날 아무도 없는 지평선이 펼쳐진 들판 한가운데서 적삼 수의를 입고 누워있는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가 나왔을 땐 나와 참 많이 닮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이 상상을 현실로 이뤄내기위해 부딪히는 많은 사건들 만난 것처럼 나 또한 내 공상 속의 이야기를 현실에서 이뤄내기 위해 그동안 많은 일들을 해왔구나 싶었습니다.
영화같은 사랑을 위해 로맨틱한 계획을 세워 사랑을 이뤄보기도 했고, 성공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고 수많은 곳들을 여행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월터 미티, 벤 스틸러도 결국 사랑을 이뤄내는 결말로 아름다운 해피엔딩이 되었죠.
하지만 이따금씩은 나는 누군가들에게 정보를 주고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그대들이 상상하는 것들이 현실에서 이루려는 것들이 어쩌면 스스로를 잔인하게 망쳐버리는 헛된 망상이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누구나 어렴풋이는 알다시피 내 머리속 상상의 결과처럼 현실은 이뤄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망각하곤 하기 때문입니다. 나 또한 아름답지 못한 많은 결과를 보아왔기도 했기에 아주 절실한 마음으로 이야기합니다.
상상은 상상으로 남을 때 가장 아름다울지도 모릅니다. 적당한 현실과 적당한 안락함 위로 이따금 영화관을 찾아 행복의 대리만족을 얻고 오듯 나만의 한 편의 영화로서 공상을 쌓아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꿈같은 상상을 위해 현실을 버리고 지금의 행복을 버리지 말아야겠습니다. 적어도 축이 맞지 않는 손저울이라도 들고와 이뤄질지도 모를 상상과 현재의 행복을 저울질 해봐야겠습니다. 훗날 잘못된 선택이라면 적어도 그 고장난 저울을 던져버릴 수 있도록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