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꽃

다가갈 수 없는 그리움

by 숨결



목화꽃



첫눈 오는 날에

벽에 걸어둔

목화꽃 한다발을 꺼내어

아람벌어진 밤송이

가지만 남겨두고

눈 쌓인 길을 나선다



눈이 오는 거리에서

왠지 알것도 같은 어느 집 앞에

이름없이 꽃을 놓아두고

왠지 낯익은 작은 놀이터에

제목없는 시를 두고왔다



눈이 오는 날은

보고 싶은 그대들이 많아서

이처럼 꽃과 시를 던져두며

혹여 그대와 마주친다면

"그냥 지나다 들렀어"

말하고 싶었다








주소없는 편지봉투



올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지나는 세월이 무덤덤해지는 나이가 되었다보니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왔다가 어느덧 언제 가는지도 모르게 또 일년이 지나가버립니다. 그동안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만났음에도 바뀌는 계절마저 익숙해저버린 때가 되어 그네들에게 조촐한 손님상 한번 내어주지 못하고 그렇게 만나고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럴 때가 되었지. 그런 세상이야'라고 쓴웃음으로 지나는 인사를 주었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감을 몰랐던게 아니라 애써 무시해왔다는걸 말입니다. 시간이 갈 수록 마음의 병은 깊어지고 팍팍한 삶에 지쳐 환히 웃으며 찾아온 당신을 맞이할 여유가 나에게는 없었습니다. 어느 시골의 병원에 갇혀 지난 삶을 곱씹고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대를 잊어가는 노인처럼 함께 하자고 찾아오는 그대들에게 등을 돌린채 잠든척을 했고 그나마 찾아오는 병문안에만 겨우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였습니다.


편지 쓰기를 좋아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절대 싫어하지 않지만 왜 쓰지 않고 있을까요. 메신저 앱으로 온 연락을 한시간 정도 답장을 하지 않는 것이 매너가 아니게 된 세상인지라 편지라는것이 어울리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고 부끄러운 넋두리를 해보지만 그것이 이유가 되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내가 쓰고 있는 시와 짧은 글들도 하나의 편지입니다. 나의 안부를 전하고 나의 마음을 고이 담아둔 글이 누군가에게 전해져 읽혀지기를 바라는 나의 외로움입니다. 하지만 나의 편지는 봉투에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대 이름이 올려진 수신인을 쓰기 전 내 이름 석자가 적힌 발신인을 아직 적지 못하고 있지요. 왜냐하면 나에게는 돈을 주고받는 것보다도 마음을 주고 받는 것이 더욱 부담이 되는 때가 바로 지금이기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어디가서 속편한 한풀이마저 쉽사리 하지 못하고 고립되고 억눌린 마음의 이야기가 수신인이 없는 편지 봉투에 담겨 이렇게 불특정 다수의 누군가에게 흩뿌려 소리치고 있습니다.


내 편지에 아직 이름이 적히지 않은 그대님. 나는 풍랑을 만나 고립된 작은 통통배에서 SOS신호를 차마 보내지 못해 그대로 가라앉아 망부석처럼 굳어 바다의 암초가 되어버렸나봅니다.


히지만 변덕스럽게도 '아무개야'라고 부를 수 없는 지금의 외로움과 슬픔을 조용히 받아드리고 순응하지는 못하는 나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고 우스개소리를 하는 사이지만, 아직도 잊지않고 때때로 먼저 연락을 주는 형들이 있고, 아직도 예뻐라 하는 동생이라 말해주는 누님들이 있고 술한잔 하자며 찾는 동생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어떤 의미로 가장 편지를 전하기 어려운 나의 가족이라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아직 나에게는 감사해야 할 많은 사람들이 있고 언제고 미뤄둔 숙제를 결국은 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더 이상 미뤄둘 시간이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당장은 편지를 쓰는 일 말고도 묵혀둔 일들이 많아 조금 더 미뤄두긴 해야하지만, 더이상 마음의 아픔으로 해야할 일들을 미루지는 않으렵니다. 너무 늦지 않게 그대들의 문 앞에 그대의 이름이 적힌 편지가 놓이기를 바랍니다. 또 당신은 그대의 이름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읽고 입구가 뜯긴 봉투에 다시 편지를 갈무리하겠지요. 많은 시간이 흘러 당신의 책상 어딘가에 내가 당신에게 보냈던 마음이 잊었던 계절같은 추억이 되어 곁에 남아있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지금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