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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번째 밤

기도해 주세요

by 숨결
기도해 주세요



월요입니다 K.

한창 재택근무로 바뀐다고 했었는데 혹시 댁에서 일을 하고 계시려나요.

조금 따뜻해졌다 싶었는데 다시 두터운 옷을 꺼내입어야 할 정도로 추워져버렸습니다. 아직 절대 봄이 올만한 시기가 아니지만 내심 계속 따뜻하기를 바랐던 마음이었는지 아쉬운 마음이 깔리웁니다.


오늘은 온몸을 감싸줄 롱패딩을 꺼내 입고 나다니고 싶었지만 중요한 면접이 있어 오랜만에 정장을 꺼내입고 수년동안 입고 있는 낡은 회색 코트를 걸쳤습니다. 올 겨울엔 새로 하나 사야지했었는데 어딘가 나가 보여줄 곳이 없다보니 이래저래 미뤄지다 오늘까지 와버렸습니다.

지금은 면접이 조금 미뤄진 덕에 근처 카페에 앉아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중입니다. 불편한 옷을 입고 앉아있기가 은근히 고역입니다. 나는 이제것 몸을 조이는 정장은 입고 다니기를 좋아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따금 오늘처럼 기회가 생기면 일에서 신경써야 할 것보다 조금만 더 정갈하게 치장을 하고 일이 끝나면 당신을 꼭 만나려곤 했습니다. 당신은 내가 정장을 입은 모습을 참 좋아했거든요. 당신의 입으로도 말해주었고 평소와 다르게 멀끔한 모습에 좋아하는 표정에서도 금새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배시시 웃으며 만족스러워하는 당신의 표정이 나는 그리도 좋았나봅니다.


수원 어느 재래시장에 면접을 보러왔습니다. 작년에 하던 일을 이곳에서 이어서 하게 되는 일입니다. 예전 우리의 바람대로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지난주 면접을 보았었던 회사는 회사의 사정이 그리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라서 서로 고민을 많이 하고 있기에 어지간하면 이곳에서 저를 잘 보아주었으면하고 기대해봅니다. 만약 기회를 잡아낼 수 있다면 나는 안정이란걸 잠시 찾을 수 있을까요?

안정보다는 불안에 또 휩싸일까 나는 걱정이 됩니다. 지난해 당신이 떠나고 찾아온 불안은 아직도 나를 갉아먹으며 내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작은 심리적 위협에도 엄청나게 취약해져 있는 내가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일을 해도 괜찮은걸까요.


해보려고 합니다. 다시금 안정이란걸 찾아 일해보려합니다.

당신이 옆에 있던 꽃다운 안정은 아니겠지만 꽃을 피우길 기다리는 축축한 흙 속의 씨앗같은 안정을 가져보겠습니다. 언젠가 K 당신에게 약속했던 한번은 찾아가겠다는 약속은 애시당초 깊은 곳에 묻어두었기에 지금의 나는 그저 어디에선가 당신이 나의 소식을 들었을 때 '그래. 잘 살고 있구나.' 했으면 합니다. 착한 당신이 혹여 나의 못난 모습에 슬퍼하지 않도록이요.


무튼 오늘의 면접이 잘 되길 바래주세요.

꼭 당신이 바래주었으면 합니다.


이제 그만 면접 후 들어가는 길 오늘은 무엇으로 한끼를 해결할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모쪼록 오늘도 가족들과 즐거운 식사를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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