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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번째 밤

예쁘게 살고 싶습니다

by 숨결
예쁘게 살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K.

입춘이라고 하더니 어느새 날이 꽤나 따뜻해졌습니다. 점퍼를 입고 다니지 않아도 춥다고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파란하늘에 화창한 날씨는 아니지만 산책하기에는 적당한 날씨이기도 합니다. 당신도 오늘 부모님과 함께 있다면 집 근처의 호수를 한바퀴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간 얼었던 호수가 녹고 새들이 물고기를 잡아 배를 채우려 물 위에 떠있고 차갑지 않은 바람이 당신을 반겨줄 것입니다.


어제 밤에는 집으로 귀가하는 차 안에서 왜인지 모르게 당신 이름을 소리내어 불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욕심을 내어 '사랑해'라고 소리내어 말해보았습니다. 마치 당신과 전화를 하듯 뭉클한 감정이 밀려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이내 곧 서글픈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은 깊은 산 꼭대기에서 외쳐 부르는 메아리처럼 되돌아 오지도 못합니다.


집으로 들어오니 아침에 환기를 시키려 창을 열어뒀기에 집 안 가득 찬공기가 그득하네요. 옷을 벗기도 전에 창을 닫고 보일러를 켜고 침대 위 전기장판을 켰습니다. 어서 빨리 따뜻해지고 싶어서요. 집 안의 온도가 달아오르기 전 옷을 벗고 샤워를 합니다. 샤워기에서 내뿜는 온수를 온몸 가득 맞고 서 있는 기분은 언제나 만족스럽습니다. 몽글몽글 부드러운 거품도 아주 좋습니다. 샤워를 끝내고 의자에 앉아 물끄러미 집을 둘러봅니다. 아직 가구와 가전을 마련하지 못해 휑한대다 청소도구조차 사두지 못해 구석구석 바닥에 먼지들이 보입니다. 머리 속에서는 어떻게 어떻게 집을 꾸미고 싶다는 그림을 잔뜩 그려뒀는데 책상 하나를 주문해 두고는 더이상 진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요즘 나는 벌이가 없거든요.

돈이 없는건 아닙니다. 벌이가 아주 없는것도 아닙니다. 지난 달 일했던 월급이 조금 늦게 들어올 예정이고 컨설팅 비용도 어서 입금해 달라고 독촉을 해뒀습니다. 계좌에는 한동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만큼 정도의 돈은 있고 간간히 가게에 나와서 매출을 올리기도 하고 이것저것 투자라는걸 하면서 어지간히 밥벌이는 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대충대충 있을 수 있다는게 신기할 지경입니다. 그럼에도 진전이 없다고 하는 건 돈에 대한 욕심이 너무 커졌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어야 돈을 벌 수 있다는걸 깨닫게 되면서 이제는 돈이 있어도 생활은 더 궁핍하고 주접스러워졌습니다. 삶은 분명 넉넉해 졌는데 사는 모습은 예쁘지가 않습니다.


예쁘게 살고 싶습니다.

K 당신처럼 책상위에 가지런히 화분들을 놓아두거나 거실 한켠 한가득 꽃을 놓아두고 싶습니다. 당신은 없지만 당신에게 보여진다는 상상으로도 부끄럽지 않도록, 이렇게 이쁘다고 자랑하도록 예쁘게 살기를 미루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계좌를 살짝 열어 가구나 가전을 하나 사야겠습니다.


K. 오늘 산책들 다녀온 당신의 새로운 보금자리도 여전히 예뻣으면합니다.

그 예쁜 공간에서 오늘도 당신의 언제나의 염원처럼 즐겁게 살자를 충실히 실천해주세요.


그럼 이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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