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이사온 집은 2층이지만 길이 넓고 층수가 낮은 동네라 침대에 누워 창을 바라보면 하늘이 아주 잘 보입니다. 창 아랫쪽으로는 편의점 간판의 조명이 조금 거슬리고 하늘 풍경에 산봉우리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하지만요.
그래서 어제는 커튼을 열고 춥지 않으면서 창 밖을 잘 볼 수 있도록 두 겹의 창 중 하나를 열어 내리는 눈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요즘은 정말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은것 같네요.
눈이 쌓일만큼 왔으니 우리 조카들은 어젯밤이나 오늘 아침엔 새로 산 눈오리 집게를 들고 오리를 만들러 갔으려나요? 어젠 귀가가 늦어 조카들을 만나러 가지 못해 뭇내 아쉽습니다.
그래도 형 식구 동네로 이사온 덕분에 맘이 조금은 포근해졌습니다. 언제든 들어가 몸을 늬일 수 있는 이불 하나가 생긴것만 같습니다. 그런 따뜻함이 느껴지니말입니다.
조카들도 자주 찾아오는 삼촌이 이젠 많이 익숙해지고 당연스러워졌는지 문을 열어주러 나오면서 더이상 '삼촌'이라 외치며 나오지는 않습니다. '어서 들어오기나해'라는 눈빛으로 문을 열어주곤 후다닥 들어가버리네요.
아직 그리 오랜 시간을 만나진 않았기 때문일까요. 조카들은 어떤 모습으로 있어도 참 사랑스럽습니다. 아이들이란 아마도 모두가 그런 존재들이겠지만 조카들은 조금 더 특별한거 같습니다. 놀러 나갈 때 이쁜 꼬까옷을 입은 모습도, 집 안에서 내의 하나 입고 뒹구는 추레한 모습도, 공부하기 싫어서 놀아주지 않아서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도 하물며 화장실에 앉아 응가를 하는 모습도 사랑스럽기가 그지없습니다.
아 그런데 아이들이 밥을 너무 조금만 먹습니다. 제가 먹는 숟가락의 두 숟갈이나 겨우 먹을까요?
그 이상은 배가 불러 먹지를 못합니다. 하루 세끼에 간식까지 먹고는 있지만 이만큼 먹어서 괜찮은건지 걱정이 됩니다. 형을 닮아서 안그래도 체격이 작은편이라 더욱 걱정입니다.
얼마 전 형수님이 잠시 나간김에 아이들 밥을 차려주고 먹이면서 '밥을 먹는건 K 당신이 참 예뻣는데'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참 열심히도 씹고 배가 빵빵하니 부를 때까지 열심히도 먹었지요. 그러면서도 절대 급하게 먹는법이 없었습니다. 곱창이나 예쁜 음식을 보면 감격에 겨워 환하게 웃던 모습도 참 사랑스러웠습니다. 나는 그렇게 예쁘게 잘 먹는 당신이 참 좋았습니다.
그러곤 당신과 나에게 아이가 있었다면 조카들처럼 이렇게 사랑스러웠겠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신과 만나던 그 시절에도 당신을 닮은 아들과 나를 닮은 딸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기도 했었습니다. 둘다 키가 작으니 아이들도 참 작겠다 서로 걱정하기도 했었던게 기억납니다. 아 그리고 아이가 생기더라도 가장 사랑해야 할건 K 당신이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던 모습도 기억납니다. 그 때 '응'이라고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K. 당신도 언젠간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겠지요.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저릿하게 아프면서도 '다행인거야'라고 되뇌입니다. 가끔은 눈물이 나기도 하지요.
그래도 당신의 아이라면 참 예쁠겁니다. 그리고 참 착할겁니다. 뭣보다 무척이고 사랑스러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