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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Apr 08. 2022

누리는 삶

2장 봄- 5

새벽에 일을 나가는 것이 힘에 부침은 사실이나 모든 일에는 장단이 있다. 새벽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아주 이른 새벽 출근 덕에 저녁 술자리와 야식들을 끊은 남편은, 수년간 타이어를 낀 듯 달고 있던 뱃살과의 이별 또한 고하고 있다. 게다가 주 6일을 출근해야 하는 주간 근무와 달리, 주 5일 근무인 야간근무는 금요일 새벽 일을 다녀와 잠시 눈을 붙인 뒤 여유롭게 여행을 떠날 수도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이번 달이 바로 그런 달이다. 금, 토, 일을 연이어 쉴 수 있는, 일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가 주어지는 달이다. 이런 횡재 같은 날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어 어디 여행이라도 가자며 남편을 졸라댔다.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대로 그럴 돈이 어딨냐는 핀잔뿐이다.

반은 공무원의 혜택을 받는다며 반공이라 불리는 '환경 공무직'에 남편이 합격하면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으로 허덕거리는 삶과는 안녕을 고할 것이라 기대했다. 한없이 높기만 경쟁률로 어떤 이들에게는 힘든 일만큼 대단한 소득이 주어질 거라 상상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현실은 보기 좋게 상상을 빗나간다. 초보 청소부에게 떨어지는 월급은 세 식구가 겨우 한 달을 버틸 수 있는 금액이다. 다만 매 년마다 조금씩 오르는 월급의 십 년 후를 생각한다면 그리 나쁘지 않다기에 그 십 년 후를 바라보며 지금의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을 미래를 위해 허리띠를 조르자는 남편과,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누릴 수 없는 소확행을 하며 살자는 나, 욜로 좋아하다 골로 간다는 남편과,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할 수 있는 건 하고 살자는 나. 우리를 늘 툭탁거리게 만드는 '무엇이 삶을 제대로 누리는 것'인가란 문제는 십여 년이 훌쩍 지난 결혼생활 속에 끊임없이 언급되건만 아직도 그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남편도 모처럼 오기 힘든 연달아 있는 휴일을 그냥 날려버리긴 아까웠는지 인심 쓰는 척하며 그럼 어디 가까운데 잠시 다녀오자며 꼬리를 내린다.

한참을 생각하다 결론낸 곳은 캠핑! 캠핑이다. 코로나로 집안에만 갇혀지낸 시간들을 만회할 만한 장소로 집에서 멀지 않는 글램핑장을 골랐다. 커다란 캐리어에 이것저것 쑤셔 넣고, 마트에 들러 숯불에 구워 먹을 삼겹살과 고구마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캔맥주도 아이스박스에 쟁여 넣었다. 조금 늦게 도착한 해지는 글램핑장에서 강아지들을 풀어두고 별빛 가득한 하늘 아래 세 식구가 숯불 앞에 모여 오물오물 씹어넘기는 저녁 맛은 최근 맛본 음식들 중 당연 최고였다. 맥주 한 잔에 느슨해진 마음으로 남편과 나누는 대화는 그동안 살아온다 고생했다며 서로를 위로하는 말들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곁에서 졸고 있는 우리를 닮은 아이와 주인이 던져 줄 고기 한 점 목 빼고 기다리는 봉선이와 깨비의 모습은 이미 우리는 충분히 삶을 누리고 있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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