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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Apr 13. 2022

빈자리

뭐가 그리 아쉬울까 싶었다.

오랫동안 남보다 못한 듯이 살아온 양반들이 누구 하나 먼저 갔다 서러워할까 싶었다. 하지만 미운 정도 정인지라 눈물이 나나 보다. 베푼 것보다 받은 것이 많았으니 그 빈자리가 서럽기도 할 것이다. 나처럼 말이다.


아버지의 생신날, 혼자 덩그러니 아들네에서 생일상을 받아드신 아버지는 그날 밤 울먹이며 내게 전화를 하셨다. 한참을 운듯한 목소리로 내 어미가 없는 생일을 홀로 맞으니 마음이 영 좋지 않다 하신다. 이제 와 어쩌겠냐며 살아생전 어미 속만 썩이던 아버지에게 원망스러운 듯 대답하고, 바쁜 일 있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하마터면 눈물 터진 내 목소리를 홀로 남은 아버지에게 들킬 뻔했다.


안방에서 남편의 통화하는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타이밍도 딱 맞춘 시댁의 전화이다. 시아버지와 남편의 통화 내용이 듣고 싶지 않으나 귀에 박힌다. 코로나로 모두가 움츠러들던 2년 전 아버님은 꽃같이 곱고 능력 있는 새 여인을 만나 푸르른 봄날 두 번째 장가를 들었다. 집 안 가득 걸린 노부부의 결혼식 사진은 얼굴에 주름이 가득이어도 여전히 설레고 곱다. 며칠 있다 미국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는 노부부는 코로나가 넘실대는 세상과 다른 곳에 사는 이들 같다.


내게는 부인을 떠나보낸 두 남자가 있다.

후회로 매일을 사는 아버지와,

후회의 시간을 보내고 새 삶을 살아가는 아버님.


그들의 삶에 빈자리가 주는 의미가 한없이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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