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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Apr 14. 2022

호기심 넘치는 할머니가 꿈입니다

중학교 때 이후로 어깨선을 넘기 힘든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이번만큼은 꼭 한번 이놈의 머리카락을, 어깨선 훌쩍 넘겨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몇 달을 꾹꾹 참다 어깨에 닿을락 말락할 즈음, 또다시 커트 병이 도졌다. 예약 없이 바로 갈 수 있다는 미장원을 찾아, 앞뒤 생각 없이 들어갔다. 컷트보가 어깨에 걸쳐지고, 어떤 스타일을 원하냐는 원장님 말에, 당신의 실력을 믿으니 무조건 쇼트커트를 해달라 했다. 서걱대던 가위질 소리가 한참을 이어지더니 시원하게 잘린 내 머리가 보인다. 십 년 먹은 체증이 쑥하고 내려가는듯하다. 얼굴에 닿는 몇 가닥의 머리카락도 싫어 헤어젤도 하나 샀다. 머리를 감고 촉촉이 물기 머금은 머리카락에, 헤어젤 쭈욱 짜, 쓰윽 하고 발라 넘기니 거울 속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여자다. 저 여자를 어디서 봤더라 하며, 뚫어질 듯 노려보다 누군지 떠올라 한참을 웃었더랬다.

외할머니다!

나의 외할머니다!

아들은 대학을 보내고, 여자는 일을 하러 가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친가 쪽 사람들과는 달리, 여자든 남자든 배우려는 놈한테 투자하여야 한다는 외할머니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런 외할머니가 가장 싫어하는 머리모양이 긴 머리 치렁거리며 풀어헤쳐놓은 모습이었으니, 당신은 항상 쇼트커트를 하고, 조그마한 갈색병에 담긴 동백기름 참빗에 곱게 묻혀, 귀 뒤로 멋스럽게 넘기는 머리모양을 하늘길 가시는 그날까지 고수하셨다. 그런 모습을 닮은 내가 저 거울 속에 비친다.

외할머니는 아흔일곱에 사랑하는 딸이 지켜보는 앞에서 눈을 감으셨다. 돌아가시기 몇 해전 다리를 삐긋하여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다. 병문안을 간 나는 저기 복도 끝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할머니들 사이, 열변을 토하고 있는 외할머니를 발견했다. 손녀딸이 온 것도 모르고 수다 삼매경이던 외할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이 재미지는 세상을 두고, 죽긴 왜 죽냐며, 이제 할 것도 없고 죽는 날만 기다린다는 할머니들을 나무라고 계셨다. 그랬다. 외할머니는 어릴 적 남의 집에 팔려가 험한 일을 하며 배움과는 거리가 먼 날을 사셨지만, 혼자서 글을 깨치고, 몸만 움직일 수 있음 돈을 벌러 나섰으며, 나이가 들어 몸을 움직이는 일이 힘들어질 때에도 글을 읽고, 온갖 운동 경기들의 규칙을 배우려 하고, 보이지 않는 눈은 아랑곳없이 손바닥으로 바닥을 쓸어서라도 집 청소를 하셨다. 가시는 날까지 혼자 남겨질 딸자식이 번거로운 일 없게 모든 자신의 주변을 말끔히 정리하셨다.

그런 외할머니를 닮고 싶은 내가, 저 거울 속에 있다.

짧은 머리 귀 뒤로 넘기며, 사람은 죽는 날까지 배워야 한다던 외할머니.

그런 외할머니를 너무나 닮고 싶은 내가, 저 거울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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