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걸려온 아버지의 부재중 전화가 세 통이나 있다. 몸살 기운에 감기약을 먹고 잠들었더니, 전화 소리도 못 듣고 세상모르게 잠들었나 보다. 놀란 마음에 무슨 일 있냐며 연락하니, 전화기를 만지다 잘못 누른 거라며 미안해하신다. 아침부터 사람 놀라게 하냐며 한껏 짜증을 쏟아낸 뒤, 늦은 외출 준비를 서두른다.
허겁지겁 달려갔건만 코앞에서 닫히는 지하철 문만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들쳐 맨 가방을 의자에 툭 올리고, 나도 털썩 주저앉았다. 이럴 줄 알았음, 걸어올걸. 남들 뛰길래 같이 뛰고 보는 나의 이 줏대 없음이란, 한심하기 그지없다. 다음 지하철을 기다리며 습관처럼 주머니에서 휴대폰 꺼내들고, 이리저리 눌러대며 남들과 시선을 피하고 있을 무렵, 귓가에 꽂히는 할머니들의 대화가 지하철 안을 울린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그저 반가운지, 옆 사람들 상관없이 한껏 올라간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다.
"살아있었네."
"그럼, 살아있지"
"우째 지냈는겨?"
"별로 아프지는 않더라. 검사하러 오라케가 가고, 집에 있으라케가 집에 있었제."
"다행이데이. 열은 안 났는겨?"
"응, 열도 안 나고 괜찮더라."
"근데, 아프니까 좋더라. 내 같이 어디 디져도 모르는 할마시를 잘 있나, 어디 아픈데 없나 카믄서 아침저녁으로 전화 오는데, 아이구, 나도 사람 취급해 주는 것 같타가 기분 좋은 거 있제. 자식들도 안 하는데, 누가 그래 다 늙은 할마시한테 전화해 주겠노. 나는 느무 고맙더라"
코로나로 확진되어 며칠 고생한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의 마지막 말에, 휴대폰에 박고 있던 머리를 들어 할머니를 보았다. 마스크에 가린 얼굴이나,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은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들어오는 지하철 소리에 할머니들의 대화는 묻히고, 나는 얼른 도착한 지하철에 올라탔다. 몇 정거장을 지나는 동안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귀에 맴돌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잠자리에 들려 눈을 감아도 할머니의 한껏 높은 마지막 말이 계속 들려왔다.
며칠 동안 내 마음을 체하게 만든 할머니의 말은, 아버지를 떠오르게 함이었다. 늦은 밤 남겨진 아버지의 부재중 전화는, 지루한 하루를 보내는 동안 연락 없는 자식에게 전화를 걸까 말까 휴대폰을 만지다, 뭉툭해진 손가락이 화면에 닿아버려 자신도 모르게 전화를 걸었기 때문이다. 며칠에 한 번 의무감으로 건 전화에, 바쁜데 어째 전화했냐는 아버지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를 떠오르게 함이다.
할머니의 말에 내 마음이 체해 버린 건,
오랜 시간 방치했던 아버지의 외로움을 알면서도 무시했던 내 모습이 들켜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