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봄- 6
패딩으로 온몸을 감싸던 날이 엊그제 같건만, 어느새 온 사방이 꽃들로 뒤덮였다. 여린 분홍빛 꽃들과 박자 맞춰 나도 살랄라 시폰 원피스 입고 나들이 한 번 갈랬더니, 살을 파고드는 찬바람은 봄날과는 담을 쌓은듯하다. 아침저녁으로 남아있는 찬 기운은 봄이 되어 겨우내 돌아가던 보일러를 쉬게 할까 싶었던 마음을, 며칠은 더 돌리자며 전원 스위치를 꾹 누르게 만든다. 방바닥 찬 기운만 가시면 바로 꺼야지 했던 보일러는, 아이를 재우다 같이 잠드는 통에 새벽까지 돌아간다. 추위타는 나와 반대로 더위 타는 남편은 찜통에서 자는 줄 알았다며, 땀에 전 잠옷을 벗어재낀다. 이번 달에도 가스값은 장난 아니게 나오겠다고 혼자서 자책하며 신나게 돌아가던 보일러를 꾹 눌러 끈다.
남편은 출근 준비를 하며 서랍 속 방진 마스크들을 챙긴다. 먼지가 그리 많냐 물으니, 연탄재가 뿜어내는 먼지가 장난 아니기에 눈까지 따갑다 한다. 이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여긴, 내 기억 속의 이야깃거린 줄 알았던 연탄이 아직도 길거리에 있다니 두 귀가 쫑긋해진다. 어릴 적 동네마다 보이던 연탄가게와 엄마가 일하러 가시며 '불구멍 막아라'라며 신신당부하던 목소리가 떠오른다. 연탄보일러의 허연색 플라스틱 물통에 물이라도 마르는 날에는 보일러 고장 난다며, 난리 블루스를 치던 엄마의 잔소리도 떠오른다. 연탄이 들어오는 날이면, 양쪽 대문 활짝 열어두고 시커먼 집게로 두 장씩 집어올린 연탄을 우리 집 한 쪽 벽면에 차곡차곡 쌓아주던 연탄집 아저씨도 떠오른다. 학교에서 제일 잘 산다는 병원 집 딸내미 집에 놀러 간 날, 너네 집은 아직도 연탄보일러 쓰냐며 나를 쓰윽 훑어보던 친구 엄마의 알 수 없는 표정도 떠오른다.
이른 새벽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다시 잠자리에 드러누워 끝이 나지 않는 연탄과의 추억을 토해내 본다. 누군가에겐 봄날에 만난 추억거리로, 누군가에게는 현실에서의 몸을 녹이는 수단으로, 누군가에게는 먼지 가득 매캐한 쓰레기로 기억되는 각자의 의미를 담은 봄날의 연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