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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May 05. 2022

빨간 립스틱 뿌연 담배 연기 그리고 일상으로의  초대

2장 봄- 7

'2022년 5월 2일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완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낮의 거리는 마스크를 쓴 이들이 거닐고 있다.


담배를 피워대는 이들은 타인의 눈길 피해 마스크를 내리고, 어둑한 골목길 안 서로가 내뿜는 연기 속 타르로 뱃속을 채운다. 좁은 골목 안에서 피어오르는 희뿌연 연기와, 바닥에 내던져진 수많은 담배꽁초 눈 내린 골목길을 청소부는 묵묵히 쓸어낸다. 그가 그렇게 쓸든 말든 또다시 한 개비의 담배꽁초는 바닥에 내팽개쳐진다. 그 장면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내게, 흥분한 아이가 말한다. 아빠가 청소할 때 저러는 아저씨 있으면 때려주라 할 거야!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기호를 즐기는 이들을 보며 분노하는 아이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올해부터 청소 일을 시작한 남편은 초짜가 2,3년간 해야 하는 야간청소를 맡았다. 새벽 1시경 출근 준비를 하고, 아이가 등교할 즈음 퇴근하는 남편의 일과는 그간 이어오던 생활패턴을 뒤집는 일인지라 적응하는 데 몇 주가 걸렸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퀭하게 지내길 여러 날이 지나고 드디어 익숙해진 야간근무, 하지만 또 다른 복병을 만났으니 그건 바로 '코로나 영업시간제한 해제'였다.


새벽녘의 길가는 청소차가 지나가기 수월했고, 대로변 널브러진 쓰레기 더미들을 쓸어 담는 일이 고되기는 하나, 넓은 판자를 비로 삼고, 제 몸만 한 소쿠리를 쓰레받기 삼아, 쓱쓱 긁고 담기를 반복하면 어느새 어지럽던 길이 말끔해지는 것이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업시간제한 해제'로 화려한 네온사인 조명과 여기저기 널브러진 사람들, 몇 배로 불어나버린 골목 안 쓰레기와 끊임없이 피워대고 버린 담배꽁초의 무덤으로 변해버렸다. 그 사이를 비집고 쓸고 담기를 반복하면, 냄새나는 청소차가 자신에게 가까이 왔다며 욕설을 내뱉는 이도, 남편이 치우고 쓸고 있는 자리에 보란 듯이 쓰레기를 내다 꽂는 이도, 청소차가 지나가지 못하게 앞을 막으며 경적을 울려대는 이들 모두 함께 해제되어 버렸다.


요 며칠 남편의 퇴근이 늦어진다. 남편은 이제 늦어진 그 시간이 자신의 새로운 퇴근시간이 될 것 같다고 한다. 힘든 시기를 이기고 일상으로 돌아감에 모두가 감사를 바라는 지금, 배로 늘어나버린 쓰레기와 새벽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청소를 해야 하는 남편의 노고에 마냥 기쁠 수만은 없는 나의 처지이다.


새벽을 즐기는 붉은 립스틱과 뿌연 담배연기, 술에 취한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를 헤쳐가야 할 나의 남편.

그렇게 일상으로의 초대를 받는 5월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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