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나들이 간 놀이동산의 화장실, 어린 손녀와 할머니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좌변기와 재래식 변기가 양쪽으로 배치된 화장실은 하필이면 재래식 변기 칸만이 비어있다. 생전 이런 변기를 사용해 본 적 없는듯한 어린 손녀는 화장실에 갈 수 없다며 버티고 섰고, 그저 양쪽에 다리를 벌리고 앉기만 하면, 좌변기 보다 훨씬 편하다며 달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자, 어린 시절 한 지붕 아래 사는 모든 사람들이 애정 했던, 대문 옆 재래식 화장실이 떠올랐다.
이른 아침 대문 옆 화장실에는 밤새 묵혀둔 찌꺼기를 빼내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촌각을 다투는 배설은 집주인이고 세 든 사람이고, 누가 우선순위랄 게 없이 변소에 먼저 앉는 놈이 제일이다. 변소 아래 찰방이는 금빛의 물결은 어느 순간 역겨움으로 다가올지 모르기에 절대 아래를 보아서는 안된다
낮에 변소 가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문제는 늘 밤에 벌어졌다. 컴컴한 변소 안, 한 쪽 모서리에 설치해 둔 백열등은 제 생명을 다했는지 한 번씩 불이 나갔다. 어느 고요한 밤, 온몸에 힘주며 한판 밀어내기에 집중하던 찰나 나가버린 백열등은 나오던 놈을 다시 들어가게 만들 만큼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어두운 밤, 그리고 그보다 더 어두워진 불 꺼진 변소 안은, 코를 찌르는 구수한 냄새도 못 느낄 만큼 공포의 도가니가 된다. 그날 이후 엄마는 변소 한 귀퉁이에 타다 만 초한 자루와 성냥 한 통을 놓아두었다. 은은한 촛불을 보며 즐기는 한바탕 밀어내기는 요즘 유행한다는 불멍의 시초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옆집 아줌마는 우리 집 변소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른 아침 대문 옆에 위치한 변소에서 터져 나오는 한 판 밀어내기의 소리들은, 상쾌한 아침을 기대하며 자신의 집 앞을 쓸고 있는 옆집 아줌마의 화를 돋운다. 듣다 듣다 참다못한 아주머니는 변소를 향해 시원한 욕지거리를 내뱉고, 변소에서 큰일 보던 아버지는 꼼짝없이 그곳에 갇혀, 나와서 싸우자니 민망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잠시 후 식식대며 방으로 돌아온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 단번에 풀어내야지! 그리 길게 앉아 푸드덕 거리냐"라며 오히려 아버지를 나무란다. 변소 덕에 평화롭던 아침은 한바탕 푸닥거리가 이어진다.
단 번에 풀어내면 좋을 일이 어찌 변소에서 벌어지는 일뿐일까. 끊임없이 막히고 잡소리 잘 날 없는 우리네 삶도, 한 번쯤은 단 번에 풀리기를 냄새나는 글을 쓰며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