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봄-9
얼굴에 달려드는 날파리떼들이 득실대는 것을 보니 여름이 오려나보다.
저녁 한 상 물리고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를 플라스틱통에 담아 하룻밤을 묵혔더니, 후끈해진 날씨 덕에 버린 음식들이 푹 삭아 그 냄새가 코를 쑤신다. 악취 덕에 잔뜩 찌푸려진 얼굴은 연달아 공격하는 날파리떼들 습격에 완전히 짜부라질 지경이다. 간밤에 어느 잘나가는 연예인이 광고하던 친환경 음식물 처리기라는 놈을 나도 하나 들이고 싶어진다. 마음먹은 김에 질러버릴까 하며 스마트폰 부여잡고 이 쇼핑몰 저 쇼핑물 기웃거린다. 한참을 그러다 도전도 못해 볼 높은 가격에 그저 천 냥 하우스에서 산 플라스틱 통 속에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다시 탈탈 털어 버린다.
현관문이 열린다. 새벽 출근 한 남편이 돌아올 시간보다 조금은 이른 시간이다. 게다가 오늘은 골목골목 쌓여있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날이 아닌, 환하게 뚫린 공원지역 쓰레기를 수거하는 날이기에 다른 날 보단 일이 훨씬 수월하다. 이런 날은 동료들과 해장국집에서 아침 한 그릇 뜨끈하게 때리고 가겠다는 양반이 오늘은 웬일로 더 일찍 퇴근했다. 당연히 아침을 먹고 오리라 여기고 간 슴슴한 아이의 아침밥만 준비한 나는 남편이 먹을만한 짭조름하고 매콤한 반찬을 허겁지겁 꺼내본다.
말끔하게 씻고 나와 개운하다 노래 부르는 남편에게 오늘 퇴근이 왜 이리 이르냐니 '짬이 튀었다' 한다. 뭔 소린가 싶어 다시 한번 '짬이 뭐냐' 물으니 음식물 찌꺼기를 분리배출하지 않고 종량제 봉투에 버린 것들이 쓰레기차 압축기에 들어오며 풍선 터지듯 팍하고 터지는 것을, 차 뒤에 매달린 청소부들이 뒤집어썼을 때 '짬 튀었다.'하는 거란다. 그렇다. 남편은 오늘 제대로 '짬'이 튄 날이다. 후덥지근해지는 날씨에 밤새 꽁꽁 싸맨 종량제 봉투 안에서 알 수 없는 시간을 삭혀졌을 음식물 쓰레기는 압축기를 만나자 고대로 펑 하고 터져버린 것이다. 한겨울에는 '짬'이 튀어도 이리 역겨운 냄새인지 몰랐으나 더워지는 날씨 속 '짬'은 그 냄새가 과연 지대로다.
계절이 바뀌어감을 튀어버린 '짬'에서 느끼는구나. 그 어느 곳보다 후덥지근하고 습할 대구의 여름, 그리고 번지 수 잘못 찾아 들어온 음식물 찌꺼기들이 제대로 농익은 '짬'을 터뜨릴 지독한 여름이 다가온다.